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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25. 2021

삼국지에서 겸손을 배운다


삼국지를 읽다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을 맞닥뜨리게 된다.

도원결의를 하고 한날한시에 죽기로 맹세한 유비, 관우, 장비는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세력을 키워간다.

당대 최고의 지략가인 제갈공명을 책사로 모시고 일당백을 상대하는 상산 조자룡을 영입하며 땅을 넓혀가서 촉나라를 세우고 유비는 황제에 오른다.

촉의 기세가 커져가는 동시에 위나라 조조와 오나라 손권의 입지는 그만큼 줄어든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유비가 천하를 통일할 것 같은 분위기가 든다.


그런데 그때를 기다리지 못하여 촉나라가 움직인다.

먼저는 관우가 자신의 용맹을 믿고 오나라 군대와 싸운다.

그것이 오나라의 책략인 것은 꿈엔들 생각 못한 관우는 그렇게 허망하게 생을 마감한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유비와 장비가 도원결의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군사를 일으킨다.

물론 제갈공명은 극구 반대하지만 결국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다.




유비가 대군을 이끌고 출정하는 사이에 이미 전방에 나가 있던 장비는 휘하 군사들을 혹독하게 다룬다.

아마 둘째 형인 관우의 복수를 하고자 가슴에 불이 붙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장비의 못된 성격이 있는데 술을 너무 좋아하고 부하들을 마구 때린다는 것이다.

그때도 그랬다.

술을 마시고 부하들을 때린 게 화근이었다.

너무 억울한 두 명의 부하가 장비가 잠든 틈을 타서 그를 암살하고 나라에 투항해 버린다.


졸지에 아우 둘을 잃은 유비는 그야말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군사들을 독촉하여 이릉에 진 치고 있던 오나라의 군대를 향해 돌진한다.

그런데 그곳은 숲이 울창한 장소였다.

오나라는 촉군이 이릉으로 돌진하자 숲에 불을 질러버린다.

그야말로 지옥불이 따로 없었다.

유비는 싸움 한 번 걸어보지 못하고 대패하였고 이후에 화병으로 숨을 거두고 만다.

그렇게 해서 촉나라는 서서히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누가 보더라도 유비가 승리할 것 같은 전투였다.

병력의 규모와 수준이 달랐다.

그래서일까 유비의 군대가 허물어질 때 삼국지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도 허물어진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삼국지가 더 이상 재미있게 읽히지 않는다.

한창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는데 절벽으로 추락한 기분이다.

‘왜 그랬을까? 조금만 기다리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괜히 관우, 장비, 유비가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


어쩌면 세 형제가 동시에 똑같이 자만해졌을까?

연이은 승승장구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자신들의 세상이 될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저쪽에서는 자신들과 맞서 싸울 장수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쪽은 천하무적이고 저쪽은 오합지졸로만 보였다.

그럴 때일수록 신중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장수는 역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교만이 하늘을 찔렀다.

그게 패망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사람들이 삼국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영웅들의 모습에 자신을 비춰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바로 이릉전투의 교훈이다.

잘난 체하면 죽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동탁도, 여포도, 유비도, 조조도, 손권도 자신이 제일이라고 생각한 순간 끝을 맞이했다.

그중의 누구도 삼국을 통일하지 못했다.

삼국의 통일은 이들이 다 떠나고 난 후에 나이 많고 늘 자신을 낮추고 지냈던 사마의가 이루었다.

어부지리였다.


사마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너무 야비한 책략가 같고 진정한 충성심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발톱을 감춘 호랑이같이 야망을 감추고 있는 섬뜩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

자신을 낮추고 엎드려서 때를 기다리면 언젠가는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 날이 온다는 것이다.

겸손한 자가 결국은 승리한다.

지금 몸을 낮추고 있다면 조금만 기다리자.

곧 세상을 얻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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