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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Nov 21. 2022

그 순간에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수잰 레드펀의 <한순간에>를 읽고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이기적이 된다.

다 그런 것은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다.

일본에서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술 취한 사람을 구하려다가 들어오는 지하철에 치여 사망한 故 이수현씨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을 의인이라고 하면서 추앙하는 까닭은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평상시에는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는 이것저것 다 해주려고 한다.

시간을 들이고 돈을 들이면서 온갖 신경을 다 쓰면서 지극 정성을 다한다.

그런데 견디기 힘든 극한의 상황이 왔을 때도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런 때가 오면 나는 의인의 그룹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있는 이기적인 그룹에 들어갈 게 뻔한다.




미국 작가 수잰 레드펀의 <한순간에>라는 소설을 읽는 내내 내 안에 숨겨두었던 이기주의를 들킨 것 같아 마음이 뜨끔했다.

주인공 핀은 16살이었다.

부모님의 사이는 무척 다정했다.

엄마와 무척 친해서 이모처럼 지내는 이웃도 있었다.

그 집에도 딸이 한 명 있었다.

결혼을 앞둔 언니와 미래의 형부가 될 사람도 있었다.

어릴 적부터 한식구처럼 지냈던 모린이라는 친구도 있었다.

지적장애가 있는 동생이 있었지만 가족들의 돌봄을 잘 받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이었다.

이 사람들이 다 같이 겨울 휴가를 가기로 했다.

신나게 스키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

가는 길에 눈길을 걸어가고 있던 청년도 한 명 태웠다.

이렇게 해서 모두 10명이 되었다.

산속에 들어서자 눈발은 거세지고 날은 어두워졌다.

하지만 캠핑카 안에서는 즐거운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갑자기 캠핑카 앞에 사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아빠가 급하게 핸들을 틀었다.

자동차는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골짜기로 추락했다.

차가 몇 번이나 구른 것 같은데 주인공 핀이 정신을 차려보니 아무런 통증도 느낄 수 없었다.

자신은 이미 죽은 것이다.

그녀의 몸은 자동차 안에 처참하게 구겨져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을 보고 듣는 것은 자신의 영혼이었다.

아빠는 중상을 입어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크게 부상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상태로 그곳에 있으면 얼어 죽을 게 뻔했다.

구조대에 연락한다며 언니 커플이 떠났다.

한참 후에 엄마도 구조대를 찾으러 간다며 길을 나섰다.

그때 주인공의 시체에서 옷을 벗겼다.

이미 죽은 딸에게는 따뜻한 옷이 필요 없었으니까.

엄마의 친구는 그 옷을 자기 딸에게 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엄마는 그 옷을 주인공의 친구인 모린에게 줬다.

순간 엄마 친구의 낯빛이 변했다.




이모부처럼 지내던 아저씨는 동생의 손에 있는 장갑에 눈독을 들였다.

아저씨는 동생에게 과자를 주면서 물물교환을 하자고 했다.

3살 정도의 지적 수준밖에 안 되는 동생은 장갑을 과자와 바꾼 후 좋아하면서 숲속으로 사라졌다.

구조대를 찾아 떠난 언니의 남자친구는 언니가 더 이상 눈길을 헤쳐나가기 힘들어하니까 언니를 두고 떠나버렸다.

이 상황을 다 지켜보는 주인공은 수도 없이 부르짖고 절규했다.

하지만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나중에 장애인인 동생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구사일생으로 구조되었다.

기나긴 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몸도 많이 회복되었다.

하지만 마음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들의 관계는 산산조각이 났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때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들은 몰랐다.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기적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라면 그 순간에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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