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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남자는 말야
괜히 나섰다가 교통범칙금만 내게 됐다
by
박은석
Oct 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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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저녁시간에 친한 이웃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되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느라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이건 내 전문이 아니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어서 별것 아니라는 듯이 대답해주었다.
자동차 보험사에 전화하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얘기를 듣다 보니까 상황이 좀 급해 보였다.
지금 동네에 있는 식당 앞에 주차해 있는데 위치가 애매했다.
음식을 포장해서 가려고 잠시 주차했다는데 주차구역이 아니었다.
보험사에 연락하고 정비사가 오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한참 분주한 저녁시간이니까 충분히 그럴 것 같았다.
마침 내가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으니까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자동차 안에 휴대용 배터리 충전기가 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자동차를 타고 그곳에 갔다.
방전된 자동차의 보닛을 열고 배터리 충전기를 연결하고 시동을 켰다.
‘부르릉!’ 성공했다.
나에게는 너무나 간단한 일이었다.
괜히 보험사를 부를 필요도 없다.
보험사에서 배터리 충전을 무료로 해 준다고 하지만 그것도 횟수에 제한이 있다.
두 번까지라고 들은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연락하면 열 번이든 스무 번이든 무료다.
역시 나는 착한 사람이고 남에게 좋은 일 하기를 즐겨하는 사람이다.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들도 음식을 포장해서 집에 가지고 가서 맛있게 먹었을 것이다.
그 일은 그렇게 잊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1주일 후에 교통범칙금 통지서가 날아왔다고 한다.
무슨 일인가 해서 통지서를 보니 바로 그날 그 시간에 찍힌 사진이 있었다.
주차금지 구역에 주차했기 때문에 거금 4만 원을 범칙금으로 내라는 내용이었다.
만약 이의가 있다면 경찰서로 연락하라는 내용도 있었다.
잠깐 식당에 들르느라 식당 앞에 주차한 것인데 그 잠깐을 봐주지 않고 단속차량이 찰칵 사진을 찍고 간 것이다.
아무리 억울하고 열받는 상황에서도 우리에게는 희망의 섬 ‘그래도’가 있다.
그래도 혹시 정상을 참작해주지 않을까 해서 경찰서에 연락해보라고 했다.
과연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서류 한 장을 보내주면서 상황을 자세히 기록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역시 우리나라 좋은 나라이고 억울한 시민의 사정을 잘 보살펴주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둘이서 정성껏 서류를 작성했다.
잠깐 식당에 들러서 음식을 포장하는 사이에 배터리가 방전됐다.
이웃인 내가 와서 충전해줬다.
그동안 10분 가까이 지났는데 그때 사진이 찍힌 것이다.
이런 내용을 육하원칙에 맞춰서 잘 썼다.
그리고 객관성을 더하기 위해서 내 이름과 직장의 직위와 연락처까지 적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싶었다.
우리는 할 바를 다했으니까 이제는 하늘의 뜻에 맡기자고 했다.
절대로 돈 4만 원이 아까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억울한 사정을 알리고 싶었다.
또 일주일이 지났다.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범칙금에 대해서 심사를 한 결과 정상참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당시 배터리가 방전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보험사를 불렀다면 정상참작이 될 텐데 보험사를 부르지 않았으니까 객관성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나는 내 직장과 직위와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걸면서 객관성을 증명하려고 했는데 그게 객관성을 입증하지 못한다니 정말 억울했다.
보험사는 되는데 나는 왜 안 되는지 따져 묻고 싶었다.
내 이웃도 허허 웃으며 그까짓 돈 4만 원 내고 말겠다고 했다.
내가 그때 나서지 말고 끝까지 보험사를 부르라고 했다면 안 내도 되는 거였는데.
괜히 내가 착한 일 한답시고 나서는 바람에 범칙금만 물리게 되었다.
나는 좋은 뜻으로 한다고 했는데 그게 오히려 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다시는 이런 일에 절대로 나서지 말아야겠다 마음을 먹고 있는데,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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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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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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