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였을 때, 내 아버지가 지금의 나보다 젊었을 때, 아버지는 종종 나에게 훈계하셨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당연했지만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아버지의 훈계를 들어야 했던 적도 많았다.
그럴 때는 솔직히 마음속으로 아버지가 밖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시니까 나에게 분풀이하신다고 생각했었다.
만만한 게 아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내 아버지는 잔소리하시면서도 꼭 한마디쯤은 밑줄 긋고 싶은 명언을 하셨다.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셔서 할아버지의 돌봄도 제대로 받지 못한 아버지셨다.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신 시골 촌부이셨다.
공부하고 싶어서 여러 책을 구입해서 탐독하신 분이셨다.
그러면서 어느 책에서 감동받은 한 문장, 살아가시면서 얻은 삶의 지혜를 나에게 들려주신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훈계는 월요일 아침 운동장에 줄 맞춰 서서 들은 교장선생님의 훈시와는 차원이 달랐다.
사실 훈계의 말씀은 교장선생님이 더 많이 하셨다.
교장선생님의 훈시는 시간적으로도 보장받았다.
잘 준비한 원고도 있었고 확성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반면에 아버지의 훈계는 즉흥적으로 이루어졌고 원고도 없었는데 내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다.
아버지는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시면서 울분을 터뜨리는 애국주의자나 민족주의자는 분명 아니셨다.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로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신앙심만 강한 보수주의자도 아니셨다.
아버지는 당신께서 가난하고 힘이 없다는 사실도,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려주셨다.
아버지의 훈계는 아버지의 솔직한 마음 표현으로 시작되었다.
교장선생님처럼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훈계는 아버지의 진심이었다.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말씀이었다.
아버지의 말씀은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야 한다고, 집안을 잘 지켜야 한다고, 밖에 나가면 웃어른들에게 예의 바르게 행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그 말씀들을 두 마디로 정리하여 우리에게 들려주셨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사람 낳고 돈 낳았지 돈 낳고 사람 낳은 것 아니다.”
이 말씀들을 아버지가 처음 하신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 아버지보다 먼저 이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말씀의 출처가 내 아버지로 알고 있다.
세상의 위인들은 한마디의 말로 기억된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했던 최영 장군.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는 자는 살 것이라고 했던 이순신 장군.
나의 소원은 조선의 완전한 독립이라고 했던 백범 김구 선생.
그들이 남긴 그 한마디의 말을 읊조릴 때마다 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 그들의 영혼이 어리어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삶이었고 내일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건 어린 나이였지만 나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가 계시니까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아버지도 그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돈이 없어 가난한 것은 극복할 수 있지만 아버지 어머니가 없어 마음이 가난한 것은 극복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주저앉고 싶어도 다시 일어서셨고 무너질 것 같아도 안간힘을 내면서 버티셨던 것 같다.
자식에게 무엇이라도 더 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집과 땅과 돈을 많이 주셨더라면 아버지의 마음이 나았을까?
힘 있는 사람들을 많이 소개해 주셨더라면 아버지의 마음이 홀가분했을까?
그런 것들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지 못하셨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을 나에게 주셨다.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것.
내 마음에 오래오래 남는 것.
‘아버지의 말씀’을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