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by 박은석


유난히 하늘이 푸르른 날이다.

길가의 가로수들도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루어 빨갛게 노랗게 잎사귀를 물들여놓았다.

이 환상적인 계절을 감상하며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굉장한 축복일 것이다.

누구나 이런 길을 걸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구나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지만 누구나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고 이 가을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다.

축복이라고 해서 굉장한 것을 기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굉장한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좀처럼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복권 1등에 당첨되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쩌면 일평생 축복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삶의 소소한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사람은 매일매일이 축복의 시간이고 축복의 날이 될 것이다.




미국의 여류 시인인 리젯 우드워즈 리즈(Lizette Woodworth Reese)의 <살아 있는 내가 나여서 기쁘고>라는 시가 있다.

이 시를 읽다 보면 내가 얼마나 축복의 삶을 살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살아 있는 내가 나여서 기쁘고 하늘이 새파라니 즐거워라.

시골의 오솔길들이 반갑고 이슬 내리니 좋아라.

해가 난 다음에 비가 내리고 비가 내린 후에 해가 나니.

할 일이 끝날 때까지 사람 사는 것이 이런 식이니.

우리가 할 것은 고작 우리 지체가 낮든 높든

하늘로 더욱 가까이 마음 자라게 애쓰는 일이니.”


시를 대하면서 부끄러웠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게 이렇게도 기쁜 일인데 나는 그것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한 채 하루를 살았다.

해가 난 다음에 비가 내리고 비가 내린 후에 해가 나는 게 당연한 일인 줄로만 알았다.

그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너무나 몰랐다.




땅속 깊은 곳에서 작업을 하다가 흙더미가 무너져 내렸을 때 그 갱도 속에 갇힌 광부들이 있었다.

암흑 속에서 무려 9일 동안 갇혀 있었다.

221시간 만에 구조된 그들은 자신들을 구하러 온 동료들을 보는 순간 서로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얼마나 기뻤으면 통곡하듯이 눈물을 터뜨렸을까?

'살았다!'는 느낌이 얼마나 좋았으면 다 큰 어른이 그렇게 눈물 펑펑 흘리면서 울었을까?

뉴스를 접하면서 나도 눈물이 났다.

그들의 생환 소식에 감사하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다시 햇빛을 볼 수 있게 된 걸 큰 축복으로 받아들였다.

뉴스를 보는 나도 그들이 큰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나는 남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감동하면서 정작 내 삶에 대해서는 별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남들이 햇빛을 보게 된 것을 축복이라고 여기면서도 내가 햇빛을 보게 된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다.

무엇이 문제일까?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너무 무감각한 것은 아닐까?

내 삶을 너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 주어진 환경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내가 너무 큰 것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매일 경험하는 작은 일들은 시시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닐까?

모든 큰 것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가을 하늘 아래를 걸어가면서도 하늘 한 번 쳐다보지도 않고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아닐까?

고개 한 번 치켜들고 파란 하늘 한 번 쳐다보기가 이렇게도 어렵다.

그래서 이 기적의 계절을 기적으로 느끼지도 못하고 있으며, 이 축복된 날을 축복으로 느끼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작은 것을 축복으로 여기지 못하면 큰 것도 축복으로 여기지 못한다.

문제는 이것이었다.

내가 작은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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