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에 시작한 1년 200권 독서 운동이 이제는 일상의 습관이 되었다.
책 읽기 운동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에게 책 한 권 추천해달라는 이들이 있다.
굉장히 난감한 질문이다.
세상에 많고 많은 책 중에서 한 권을 딱 꼽는다는 것은 굉장한 고민거리이다.
얼마 전에 아들이 학교에 가지고 갈 시집 한 권을 골라달라고 했다.
중학생에게 추천하는 시집은 어떤 게 좋을까 잠시 생각했다.
현대시는 산문처럼 여겨질 테고 쉽게 외울 수도 없으니 일단 제외하였다.
사춘기 아이들에게는 서정시가 제일일 테니까 그 방면으로 고르려고 했다.
백석의 <사슴>이 퍼뜩 떠올랐지만 순우리말 평안도 사투리가 마구마구 나오니까 아이가 읽다가 무슨 말인지 모를 것 같았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꺼내 들었는데 하필 그게 초판본을 그대로 다시 복사한 책이라 1930년대의 문체이다.
아이에게는 외국어 같을 것이다.
결국 고르고 골라서 김소월의 시집을 택했다.
현대어로 시구들을 고쳐서 나온 책이 있었다.
책 제목도 <선생님과 함께 읽는 김소월>이다.
전직 국어 선생님이었던 도종환 선생이 해설을 덧붙인 책이다.
이 책이면 됐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그래도 2020년대를 살아가는 아이가 1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의 시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도 같았다.
그래서 한 권을 더 추가했다.
나태주 선생의 시집이다.
시를 좀 읽는 사람이라면 책장에 나태주 선생의 시집 한두 권쯤은 꽂혀 있을 것이다.
나태주 선생의 시들은 쉽다, 짧다, 밝다, 사랑스럽다, 긍정적이다.
그래서 나도 무척이나 좋아한다.
아이도 좋아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시집을 건네주었다.
책장을 정리하면서 대부분의 책은 처분했고 액기스 같은 책만 남겨뒀었다.
내 고집 때문에 시집들은 건들지 않았다.
그 고집 때문에 이렇게 아이에게 건네줄 시집이 생긴 것이다.
세상은 넓고 책은 많다.
아무리 방랑벽이 있는 사람이라도 한평생 살면서 세상을 다 둘러볼 수는 없다.
아무리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세상의 책들을 다 읽을 수는 없다.
14년 전에 책 읽기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여러 사람이 나에게 권면해 주었다.
좋은 책을 잘 골라서 읽으라고 했다.
어떻게 그 많은 책 중에서 한 권을 고를 수 있을까? 그러나 책을 집어 드는 순간 한 권을 고른 것이다.
그 책이 좋은 책인지 안 좋은 책인지는 다 읽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나에게 조언을 해준 사람들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밖에 없었다.
좋은 책이 어떤 책인지 구별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그 책 속에서 한 단어, 한 문장만이라도 얻는다면 세상 모든 책은 다 좋은 책이 된다.
백석의 시집도, 윤동주의 시집도, 김소월의 시집도, 나태주의 시집도 모두 좋은 책이다.
그 책들을 읽으면서 보석과도 같은 글들을 얻었다.
그림을 모르는 내가 그림을 전공한 아내와 함께 미술 전시회에 간 적이 있다.
나는 그림 한 점 앞에서 이게 무엇을 그린 것일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 아내는 벌써 전시회장을 한 바퀴 돌고 있었다.
왜 그렇게 빨리 가냐고 물었더니 그림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느껴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 내가 깨달은 게 있다.
무엇을 그렸는지를 보는 게 아니라 화가가 어떤 느낌으로 그렸는지, 그리고 내가 그 그림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갖게 되었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책 읽기도 그와 같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어떤 느낌을 받게 되었는지,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어떤 단어와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는지를 발견하면 성공한 책 읽기라고 생각한다.
2022년 10월에 읽은 책들은 모두 23권이다.
그중에서 어떤 책이 제일 좋은 책이라고 선뜻 말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모든 책이 다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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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참 괜찮은 태도>. 박지현. 메이븐. 20221001
254. <최초의 여신 인안나>. 김산해. 휴머니스트. 20221003
255. <세상이 기다리는 기독교>. 스캇 솔즈. 정성묵. 두란노. 20221004
256. <미국을 만든 50개 주 이야기>. 김동섭. 미래의창. 20221005
257. <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 김헌. 아카넷. 20221006
258. <리비우스 로마사 1>. 티투스 리비우스. 이종인. 현대지성. 20221010
259.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 찰스 핸디. 강주헌. 인플루엔셜. 20221011
260. <한국인의 맛 : 짜장면부터 믹스커피까지>. 정명섭. 추수밭. 20221012
261. <리비우스 로마사 2>. 티투스 리비우스. 이종인. 현대지성. 20221012
262. <과식의 종말>. 데이비드 A. 케슬러. 이순영. 문예출판사. 20221014
263.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강신주, 지승호. 한국교육방송공사(EBS). 20221016
264. <누구에게나 신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에릭 와이너. 김승욱. 어크로스. 20221018
265. <최초의 인간>. 알베르 카뮈. 김화영. 열린책들. 20221021
266. <나의 투쟁(상)>. 아돌프 히틀러. 서석연. 범우사. 20221023
267.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박홍규. 문예출판사. 20221024
268. <10시간 만에 배우는 세계사>. 미야자키 마사카츠. 박현지. 탐나는책. 20221025
269. <브람스의 밤과 고흐의 별>. 김희경. 한국경제신문. 20221026
270. <반전의 한국사>. 안정준. 웅진지식하우스. 20221026
271. <화성, 정조와 다산의 꿈이 어우러진 대동의 도시>. 김준혁. 더봄. 20221028
272. <아름다운 말 한마디를 나누러 가고 싶다>. 이종록. 대한기독교서회. 20221028
273. <전쟁으로 보는 중동 역사>. 김균량. 북랩. 20221029
274. <로마제국 쇠망사1>. 에드워드 기번. 이종인. 책과함께. 20221030
275. <로마제국 쇠망사2>. 에드워드 기번. 이종인. 책과함께. 2022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