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내 마음에서 안녕을 빼앗을 수 없다

by 박은석


사람을 만날 때면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내 몸에 밴 습관이다.

어색한 사이의 사람을 만날 때도 고개를 숙인다.

그때는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나온다.

장례식장에 가서 유족을 만나 인사를 할 때도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나오는 걸 가까스로 입막음했던 적도 있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은 누가 뭐래도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인사말이다.

안녕하면 좋을 것이라는 바람이 이 인사말 속에 들어 있다.

하기는 수없이 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살아온 민족이다.

척박한 땅을 일구며 주린 배를 움켜쥐며 살아온 민족이다.

등 따습고 배부르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말을 소원처럼 되뇌었던 민족이다.

밤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낮이 지나는 동안에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밤이 되면 무사히 아침이 오기를 바랐고 아침이 오면 또 무사히 밤이 오길 바라며 살았다.




하루가 가면 그와 똑같아 보이는 또 하나의 하루가 오는데 그 하루를 맞이하는 우리의 상황은 매일매일 달랐다.

어떤 때는 좋았다가 어떤 때는 안 좋았다.

마치 널뛰기를 하듯이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올라가는 것도 긴장되었고 내려가는 것도 긴장되었다.

이렇게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힘을 다 쏟는 것보다 편안하게 아무 일도 없듯이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 그저께와 비슷한 오늘이라면 어제와 그저께의 경험으로 오늘을 예측할 수 있고 오늘의 일을 대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당황하지도 않을 것이고 큰 손해를 보지도 않을 것이고 사건이나 사고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을 당하지도 않을 것이고 슬픔을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상황이 닥쳐오면 재빨리 피하면 될 테고 아예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런 편안한 상태를 ‘안녕’이라고 했다.

힘든 세상에서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는 안녕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안녕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안녕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게 되었다.

인사를 받는 사람은 누구든 자신이 지금 안녕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녕’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안녕’을 생각하게 된다.

말이라는 게 그렇다.

말이 귀에 들리면 머릿속에서는 상상이 시작된다.

전쟁이 나서 전 재산을 잃을 수 있다.

안녕하지 못한 것이다.

가뭄과 홍수 등 천재지변이 나서 식구들을 잃을 수 있다.

안녕하지 못한 것이다.

몸에 질병이 생기고 전염병에 쓰러질 수 있다.

안녕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안녕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안녕을 꿈꿀 수는 있다.




인물 좋고 큰 부자가 되고 건강하고 자녀들이 공부 잘하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명예와 권세를 얻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충족된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안녕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안녕은 그런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안녕은 밖에서부터 나에게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부터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안녕은 내 주변의 사람들이나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나에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속에서 내가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다.

안녕은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아무도 나에게서 빼앗을 수 없다.

어떤 환경도 나에게서 안녕을 제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 안녕을 포기해버리면,

내가 안녕을 꿈꾸는 것을 그만둬버린다면,

안녕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안녕하지 못하다.

우리나라도 안녕하지 못하다.

우리 삶도 안녕하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안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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