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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남자는 말야
누군가 나에게 꼭 종교를 믿어야 하냐고 물었다
by
박은석
Nov 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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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의 청춘이 나에게 물었다.
꼭 신을 믿을 필요가 있느냐고.
자신은 무신론자인데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을 책임 있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지내다 보니까 일이 잘 풀렸다고 했다.
설령 일이 잘 안 풀렸을 때는 자신의 운명인가 보다 생각하고 그냥 받아들였다고 했다.
지금까지의 살아온 것처럼 굳이 종교를 갖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나에게 무슨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이름도 모르고 스쳐가듯 두어 번 본 것뿐인데 왜 나에게 다가와서 갑자기 종교 이야기를 한 것일까?
그 청춘의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의 톱니바퀴들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렵게 얘기하지 말자. 간단히 끝내자.’
이런 말을 하기까지 긴 시간 동안 고민했을 것이다.
쉽지 않은 질문이다.
딱히 어떤 해답을 들으려고 한 것도 아닐 것이다.
자기는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굳이 이런 질문을 나에게 던질 이유가 없다.
분명히 뭔가 복잡한 게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이런 사람을 만나면 잘 걸려들었다고 생각했었다.
장황하게 여러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결론으로는 내가 믿는 기독교를 소개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기가 싫었다.
종교는 내가 권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믿어지는 것도 아니고 강요한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의 질문은 자신에게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게 아닐 것이다.
내가 왜 종교를 믿고 있는지 그것이 궁금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종교를 믿는 이유를 설명해주면 될 것이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누군가를 의지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 의지하는 대상이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부모님을 의지했는데 언젠가는 부모님이 나를 의지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의지했는데 그 사람이 떠나가 버리기도 한다.
결혼을 하면 둘이 서로를 의지하는데 언젠가는 한 사람이 먼저 가고 한 사람은 홀로 남는다.
영원히 변하지 않고 내가 의지할 존재가 있을까?
나에게 그 존재는 신이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좋은 대답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종교에 대한 질문은 끝이 없을 테고 아무리 답변을 한다고 해도 종교를 믿지 않는 이상 납득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못된 사람은 잘 살고
,
착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고생을 하는가?
왜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큰 아픔을 안고 태어나는가?
왜 어떤 사람은 원치 않는 질병 때문에 고생을 하는가?
왜 어떤 사람은 재앙을 만나 목숨을 잃는가?
그 사람의 죄 때문인가?
아니면 그의 조상들의 죄 때문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심술궂어서 그런 것인가?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다고 하는데 제발 그 특별한 뜻을 거두어주시면 안 될까?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게 해 주시면 안 되는 것일까?
더도 말고 하루 세끼 밥을 먹고, 누울 집이 있고, 입을 옷이 있고, 평균수명을 누리다가 가면 안 될까?
이런 질문에는 명쾌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끝에 가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얼버무리지만 끝에 가서도 모를 수 있다.
나중에 하나님을 만나면 이런 것들을 꼭 물어보고 싶다.
그때 나에게 왜 그러셨었는지 물어보고 싶다.
책을 많이 읽고 소설 속에서 여러 인생을 만나면 이런 질문들을 풀 수 있을 줄 알았다.
신학을 깊이 공부하면 뭔가 깨달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오랜 시간 기도의 시간을 가지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한 뼘밖에 안 되는 내 머리로는 하나님이 만들어내신 수학 연산을 다 계산할 수가 없다.
깨닫고 이해하고 알 수 있으면 하나님을 더 잘 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서인지 내 믿음도 형편없는 것 같다.
하나님이 나에게만이라도 귓속말로 살짝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그래서 귀를 기울여보는데 하나님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
나에게 질문을 던진 그 청춘처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궁금하다.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알 수가 없으니 별도리가 없었다.
믿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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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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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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