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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Nov 11. 2022

나의 글쓰기 장소와 시간


집에서 나와서 탄천을 거닐다가 조용한 벤치에 앉았다.

고즈넉한 가을 분위기에 잠시 젖었다가 블루투스 키보드를 꺼냈다.

내 분신처럼 가능하면 어디를 가든지 주머니에 블루투스 키보드를 넣고 다닌다.

전에는 수첩과 볼펜을 가지고 다니기도 했지만 블루투스 키보드라는 녀석을 만나고 나서는 잊은 지 오래되었다.

나에게 언제 글을 쓰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딱히 글 쓰는 시간을 정해 놓은 건 아니다.

아무 때나 쓴다.

아무 때나 쓰니까 언제나 쓸 준비를 해야 한다.

바로 이런 때다.

탄천을 거닐다가 잠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때면 아무 데서나 자리를 잡고 글 한 자락을 풀어낸다.

어떤 이들은 좋은 선생님 밑에서 글쓰기를 배운다고 한다.

나는 그럴 여력이 없어서 혼자 글쓰기를 한다.

어떤 이들은 자기만의 방을 마련해서 글을 쓴다고 한다.

나는 그럴 여력이 없어서 아무 데서나 글을 쓴다.     




글 쓰는 데 특별한 장소나 정해 놓은 시간이 있으면 좋다.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소설 <남한산성>의 서문에서 김훈 선생은 그 소설을 쓸 때 매일 남한산성을 걸었다고 했다.

산성의 돌을 만지면서 그 옛날 병자호란 당시 백성들의 애환을 느끼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설 <남한산성>은 비록 서재에서 타이핑은 했겠지만 그 글들은 남한산성을 돌면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이어령 선생은 문학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면에서도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어쩌면 그렇게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냐고 누군가 여쭈었었다.

그때 이어령 선생의 대답이 너무 뜻밖이었다.

당신이 어렸을 때, 한창 학교에 가서 공부해야 할 때, 시대적인 영향 때문에 학교에 갈 기회가 적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 가지 못하고 친구들과 실컷 놀다 보니까 엄청난 아이디어들이 축적되었다는 것이다.     




<백 년을 살아 보니>라는 책으로 우리 사회에 큰 깨달음을 주었던 김형석 선생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당신이 중학생 때인가 일제에 의해 신사참배를 강요받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 신사참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그가 다니던 학교는 문을 닫았고 그도 1년 동안 휴학을 했다.

그런데 그 1년 동안 실컷 놀다가 남는 시간이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고 했다.

그런데 1년 후에 복학을 하고 나니까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가르치시는 내용들을 자신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고 했다.

지난 1년 동안 책을 읽으면서 다 배워버린 것이다.

만약 그때 휴학하지 않고 계속 학교에 다녔다면 그만큼의 지식과 지혜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령 선생이나 김형석 선생이나 일리 있는 지적을 해 주셨다.

우리는 흔히 학교에서 선생님을 통해 배우지만 학교가 아니어도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충분히 배울 수 있고 배우고 있다.




학교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는 아이들을 가르치기에 가장 좋은 기관이다.

내가 사범대학을 나오게 된 것도 아이들을 가르치기에 가장 좋은 게 선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학교만큼 아이들에게 잘 가르쳐줄 수 있는 기관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꼭 학교에서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언제든지 어떤 상황에든지 배우려는 마음만 있으면 배울 수 있다.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 선수는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축구에 관해서는 세상 누구보다도 잘 아는 선수가 되었다.

그에게 고등학교는 시멘트로 세워진 건물이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뛰었던 운동장이었다.

매일 한 편의 칼럼을 쓰기 위해서 특별히 정해 놓은 장소와 시간은 없다.

그러나 매일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은 있다.

매일 그 장소와 시간이 달라지지만 매일 새로운 장소와 시간이 생긴다는 게 신기하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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