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를 사서 마실 때마다 아까운 마음이 든다.
물을 사서 마시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 고향 제주도는 물이 맑기로 유명하다.
스무 살까지 자라오면서 한 번도 물을 사서 마신 적이 없었다.
운동장에서 뛰어놀다가 목이 마르면 수도꼭지에 입을 붙이고 쪽쪽 빨아 마셨었다.
육지에서는 보리차를 끓여서 마신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제주도에서는 수돗물을 그대로 마셨었다.
가끔 선생님께서 머지않은 미래에는 물을 돈 주고 사서 마실 때가 올 것이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다 농담인 줄 알았다.
물을 돈 주고 사서 마신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되어 서울에 와서 보니 집집마다 보리차를 끓여 마시고 있었다.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마시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소문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슈퍼에서 생수를 팔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물을 사서 마시기 시작했다.
은행이나 교회처럼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에는 서비스 차원에서 정수기를 설치하였다.
일회용 종이컵을 들고 정수기의 물을 받아 마시는 내 모습이 점차 자연스러워졌다.
아마 그때쯤이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정수기 사업이 잘되는 것을 보고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정수기 사업이 꽃을 피울 것이라고 예견한 사업가들이 있었다.
하지만 정수기를 집에 들이기에는 그 가격이 굉장히 비쌌다.
대학 등록금이 100만 원 대였는데 정수기 가격도 그만큼 했다.
그러니 정수기가 좋기는 해도 가정에서 구입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88올림픽 이후 경제 호황기를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IMF 구제금융이라는 암흑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업종에 관계없이 줄도산하였다.
정수기 사업에 뛰어든 사업가들 중에도 시장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겼은 이들이 많았다.
물건을 생산했지만 물건이 팔리지 않는 시간이 길어갔다.
영업사원들이 발바닥이 닳도록 뛰어다녀도 비싼 정수기를 구입하겠다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창고에 쌓인 정수기를 헐값에 팔아넘기든지 폐업을 하든지 결정해야 했다.
속이 타들어가는 그 상황에서 한국 코웨이의 윤석금 회장은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정수기를 파는 게 아니라 빌려주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팔리지 않을 정수기를 창고에 쌓아두기만 하면 나중에는 고철 덩어리밖에 안 될 것이었다.
그러느니 차라리 몇 달이라도 빌려주고 임대비라도 받자고 한 것이다.
굉장한 모험이었다.
계산기를 두드리던 사람들은 한 번 빌려준 정수기는 다시 팔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임대해서 얼마나 쓰겠냐고 하면서 부정적인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윤 회장은 과감하게 욕심을 버렸다.
정수기 렌털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박이었다.
지금은 여러 회사가 정수기 렌털 사업을 한다.
렌털 사업은 정수기, 연수기, 비데로 종목을 넓혔고 이제는 자동차에까지 뻗쳐 있다.
수도꼭지에 입술을 대고 쪽쪽 빨아 마셨던 나도 이제는 매일 아침 렌털 정수기의 버튼을 눌러서 물 한 잔을 마신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만약 렌털 사업이라는 것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내가 쉽게 정수기의 물을 마실 수 있었을까?
장담할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는 숨 막히는 고민이 있었고 그 고민을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때 그는 아마 벼랑 끝에 서 있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다 내려놓고 다 비운다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박경리 선생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책 제목 같다.
다 버리고 나니 다시 채워진 것이다.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채우기만 해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언젠가는 버려야 할 때가 있고, 비워야 할 때가 있다.
그래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