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Dec 02. 2022

나 잘났다고 하는 세상에 나 못났다고 하는 사람

 

음악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가진 연주자들의 일상을 살짝 볼 수 있었다.

연주회를 앞두고서 얼마나 치열하게 연습하는지는 나로서는 가늠이 되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연주자라면 대충 연습을 해도 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연습하는 것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습이 끝나고 일상의 모습을 보면 언제 그렇게 치열하게 연습했냐는 듯이 너무나 편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길에서 만나면 그냥 스쳐가는 행인으로 생각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하기는 가끔 유명한 연주자가 허름한 차림새를 하고서는 길거리에서 즉흥 연주회를 할 때가 있다.

앞에는 빈 깡통 하나 놓여 있고.

티켓 한 장에 수십만 원을 웃돌 텐데 길거리 음악회를 하면 사람들이 별 대수롭지 않은 사람으로 취급한다.

그 연주자가 평범한 사람의 연기를 너무나 잘 소화한 것이라고 봐야 하는지.




어쨌거나 세계 최고의 연주자라고 하더라도 연주회를 앞두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몸 컨디션을 조절하느라 굉장히 신경을 쓰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심장이라고 천천히 뛰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심장이 콩닥콩닥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 표정을 보면 전혀 떨리지 않는 것 같은 표정이다.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인다.

분명히 어젯밤까지 강도 높은 훈련과 연습을 했을 텐데 전혀 그러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

나 같으면 얼굴에 피로감이 확 올라올 텐데 그들은 그러지 않고 마치 그 시간을 즐겁게 즐기고 있는 듯했다.

어떻게 하면 그들처럼 자기 관리를 잘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마침 연주자 중의 한 사람이 자신의 연주기법을 설명해 주었다.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 

그 하나의 단어 속에 비밀이 있었다.




스프레차투라는 이탈리아어로 ‘힘들이지 않고 천천히’라는 뜻을 지니는 말이다.

사실 이 단어에는 ‘경멸’, ‘멸시’의 뜻도 있다.

너무나 형편없어서 경멸과 멸시를 받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단히 수준이 높은 고수가 대단히 수준 낮은 사람인 척 연기를 한다면 그 고수의 연기를 경멸할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굉장한 연기력을 보여줬다며 환호할 것이다.

스프레차투라라는 말은 이런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어릴 적에 홍콩영화에서 술에 취한 할아버지 흉내를 내는 성룡의 연기를 보면서 깔깔대며 웃었던 적이 있다.

취옹의 취권이라고 했는데 술에 취해서 휘청이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은 굉장한 무술이었다.

스프레차투라의 홍콩식 표현이었다.

허름한 식당에서 아무거나 시켜서 먹었는데 이제껏 맛보지 못한 별미인 경우가 있다.

주방에서는 특별한 비법이 없고 대충 차렸다고 한다.

이게 스프레차투라이다.




최고의 실력자는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실력은 별것 아니라며 겸손을 떤다.

굉장한 연습을 했으면서도 마치 한 번도 연습을 하지 못한 것처럼 엉성한 티를 낸다.

왜 그럴까?

상대방을 기만하기 위해서일까?

그게 아닐 것이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부담감을 갖지 말라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렇게 스프레차투라를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화기애애해진다.

평생 모은 재산을 경찰서에 맡기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하는 어느 할머니가 있었다.

그분은 분명히 부자이지만 스스로 가난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스프레차투라를 삶으로 실천하는 분이다.

다들 자기가 잘났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약해 보이면 잡아먹힐 것 같은 세상이다.

그런 세상 한복판에서 “나는 못났소!”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정말 못난 사람일까?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


매거진의 이전글 불평 Out! 불만 Ou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