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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Dec 03. 2022

함부로 판단하지도 말고 함부로 믿지도 말자

 

중국 한나라의 황제인 문제 때 장석지(張釋之)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10년 동안 말을 관리하는 기랑(騎郎)이라는 낮은 관리로 있었는데 그의 인품과 능력이 출중했다.

그에 대한 소문을 들은 한문제는 그에게 조정의 의례를 주관하는 알자복야(謁者僕射)의 벼슬을 내렸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를 데리고 금원(禁苑)이라는 궁궐 후원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호랑이를 비롯한 여러 동물들을 기르고 있었다.

한문제는 금원의 책임자를 불러서 등록된 동물들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은 책임자는 너무 놀라서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고 눈만 멀뚱거리고 있었다.

주위에 서 있던 여러 관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어느 말단 관리가 재빨리 대답을 해서 그 위기를 넘기게 했다.

한문제는 말단 관리가 대답을 잘하는 것을 보고 다른 궁금한 사항들도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때에도 그 말단 관리의 대답은 막힘이 없었다.




금원을 시찰하고 돌아온 한문제는 나라의 관리라면 응당 그 말단 관리처럼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얼버무렸던 금원의 책임자는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장석지를 불러 그 말단 관리를 금원의 책임자로 발탁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장석지가 한문제에게 강후(絳侯)의 주발(周勃)은 폐하께서 보시기에 어떠냐고 여쭈었다.

한문제는 주발은 덕망이 높은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장석지는 이번에는 동양후(東陽侯)의 장상여(張相如)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한문제는 그도 역시 덕망이 높은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장석지가 말했다. 


“주발과 장상여는 덕망이 높은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하지만 그들처럼 덕망 높은 이들도 제대로 설명을 못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대답을 잘 못 했다고 해서 형편없다고 판단하시고

말 한마디 잘했다고 좋은 신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장석지는 말솜씨가 좋다는 이유로 사람을 등용한다면 백성들이 화려한 언변만 길러서 황제에게 발탁될 기회를 얻으려 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나라 안에 충성스럽고 성실한 사람들은 사라지고 황제가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하는 사람만 넘쳐날 것이라고 하였다.

비록 작은 결정이지만 이 명령이 시행되면 결국 나라가 어지럽게 될 것이라고 충언을 한 것이다.

10년 동안 낮은 등급의 관리로 있었던 장석지였기에 금원에서 황제의 질문을 받은 관리들이 쩔쩔맸던 심정을 이해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황제에게 충언을 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장석지의 말을 들은 한문제는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금원의 말단 관리를 책임자로 발탁하려고 했던 생각을 접었다.

중국 북송 시대에 사마광(司馬光)이 역사 속에서 교훈이 되는 이야기들을 추려서 엮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수록되어 있는 이야기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자신이 궁금했던 내용을 단번에 해결해 주는 사람을 예뻐하는 것은 본능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좋은 사람은 아니다.

깜짝 해결사로 등장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 능력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언변이 약해서 조리 있게 빨리 대답하는 것을 잘 못 한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나 행실이 약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힘이 약해서 순간적으로 큰 힘을 쓰는 일을 잘 못 한다.

그러나 긴 시간 끈기 있게 해야 하는 일에도 약한 것은 아니다.

말 한마디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할 수 있고 인상 하나로 그 사람의 능력을 가늠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그 사람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다.

우리가 듣지 못하는 그 사람의 말이 있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그 사람의 삶이 있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도 말고 사람을 함부로 믿지도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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