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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Nov 28. 2022

불평 Out! 불만 Out!

세계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인 스위스는 사실 인구 850만 명의 작은 나라이다.

국토의 70%가 산악지대여서 농사지을 땅은 얼마 되지 않으며, 개발할 수 있는 천연자원도 많지 않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역사적으로 강했던 나라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어서 존립을 장담하기도 쉽지 않았던 나라이다.

험준한 알프스산맥에 둘러싸여 있어서 살아가기도 힘들었다.

지금이야 관광산업이라는 게 생겨서 부가가치가 높은 지형이지만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던 옛 시절에는 알프스 같은 험한 산지는 각광받지 못했다.

너른 평야가 있는 지역이 제일 좋은 곳이었고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스위스 같은 산지는 별로 좋은 땅으로 여기지 않았다.

아마도 스위스 사람들의 족보를 따져보면 그들의 조상들이 그곳에 오게 된 기구한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아무런 사연이 없고서야 그런 험한 곳에 들어올 리가 없었을 것이다.




스위스는 낙농업이 발달했다고 배웠다.

언어의 함정이다.

낙농업이 발달했다는데 비교 대상으로 제시하는 나라가 없다.

그러니 말로만 들으면 목축도 잘되고 농사도 잘되는 것처럼 여길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이도 저도 아닐 수 있다.

그나마 가능했던 산업이 축산업과 농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먹고살기가 힘들었으니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스위스 남성들의 고민은 엄청 컸을 것이다.

그들은 단기간에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응당 그런 일에는 위험 요소가 크지만 스위스 남성들에게는 너무나 큰 유혹으로 다가왔다.

그 일은 전쟁 용병이 되는 것이었다.

유럽 사회는 수 세기 동안 종교전쟁, 영토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전쟁을 벌이는 국왕이나 영주들에게는 일차적으로 전쟁터에 나가서 싸울 군인이 필요했다.

그들은 부족한 군인을 채우기 위해 돈을 주고서라도 다른 나라에서 군인을 사 오려고 하였다.




물론 아무 사람이나 군인으로 채용하지는 않았다.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비는 용맹한 전사여야 했다.

평소에도 치열한 생존 싸움을 벌여왔기 때문에 스위스 사람들은 전쟁터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더군다나 그들은 자신을 고용한 군주에게도 충성을 다했다.

대가로는 전쟁 후에 얻는 생명 수당으로 족했다.

돈 몇 푼 받으려고 목숨이 위험한 전쟁터에 뛰어드느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벼랑 끝에 서 본 사람은 안다.

그 돈 몇 푼이 목숨과도 같다는 사실을 말이다.

스위스 사람들의 용맹과 신실함이 널리 알려졌기에 어느 나라든지 간에 전쟁을 앞두고서는 스위스 용병을 데려오려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전장에서 스위스 용병들끼리 적군과 아군으로 나뉘어 싸우는 일도 있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지키는 근위병들도 모두 스위스 용병들이라고 하니 과연 그들의 용맹함은 세상이 인정할 정도였다.




제아무리 험한 땅일지라도, 제아무리 고단한 인생일지라도 사람들은 그 역경을 이겨낸다.

스위스 사람들이 그 증거이다.

그들은 척박한 환경에 불평하고 불만을 토로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그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였고 도전하였다.

삶 자체가 고난의 파도처럼 그들에게 몰려왔지만 그들은 파도에 파묻히지 않고 파도 위에 올라타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삶 그 자체는 행복이라고 할 수도 없고 불행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삶 자체는 순수하고 찬란한 그 어떤 것이다.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것은 삶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와 같다.

고통스러운 삶은 고통이라는 포장지에 감싸인 삶이다.

그러므로 그 포장지가 벗겨지면 그 안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삶을 보게 될 것이다.

삶이 힘들다고 불평하거나 불만을 품지 말자.

고난으로 포장된 축복이라고 생각하자.

삶은 언제나, 모든 순간이 축복이다.

불평 Out! 불만 Ou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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