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리고 실수하는 바람에 소설 같은 인생이 되었다

by 박은석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대구에 가게 되었다.

토요일이라 고속도로 곳곳이 막혔고 목적지까지의 예상 시간은 4시간이 걸린다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주었다.

행사에 필요한 순서지를 만들고 인원수만큼 복사를 하고 준비물을 챙겼다.

시간 조정을 넉넉하게 했기에 길이 좀 막힌다고 해서 초조하지도 않았다.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서 호두과자도 사고 핫바도 사고 커피도 샀다.

경기도를 지나고 충청도를 지나고 경상도로 들어서자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목소리를 가다듬느라 헛기침도 하고 노래를 부르며 발성 연습도 했다.

순서지의 내용도 떠올려 보았다.

이미 그 내용은 머릿속에 사진처럼 박혀 있었다.

상황에 따라서 세부 순서를 조정해보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틀을 짜 보았다.

팔을 뻗어 조수석에 있는 순서지를 집어보려고 했다.

아! 그런데 순서지를 넣은 서류봉투가 없었다.

이게 어디 갔지?




분명히 출발할 때 서류봉투를 챙겼다.

그건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 차 안에 그 봉투가 없다.

이게 어디 갔지?

시속 110킬로로 운전을 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온통 3시간 전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순서지를 챙기고 다른 것들도 챙기느라 잠깐 자리를 옮겼었다.

그리고 필요한 물건들을 다 들고 자동차에 탔다.

순서지는?

그러고 보니까 자동차에 탔을 때 순서지를 담은 누런 서류봉투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사무실에 전화를 했더니 내 동료는 내가 분명히 순서지를 가지고 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만 저쪽 책상을 다녀오더니 그 서류봉투가 거기에 무사히 잘 있다고 한다.

이런 낭패가 있나?

중요한 행사여서 그 순서지가 필요한데 내가 잊어버린 것이다.

실수한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때, ‘대구에도 인쇄물 복사하는 데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람?’하는 생각이 났다.




행사장에 도착하기 전에 근처에 있는 인쇄소를 찾아보면 된다.

요즘은 문구점에서도 복사를 할 수 있으니까 좀 규모가 큰 문구점을 찾으면 된다.

내비게이션이 그런 것은 잘 찾아준다.

순서지 파일은 내 동료에게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하면 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니까 그 짧은 시간 동안 괜히 마음을 졸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나는 똑똑하다는 자부심도 들었다.

그러다가 한 발짝 더 나아가서 그 행사장 사무실에 전화하면 어떨까 싶었다.

내 사정을 얘기하면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화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행사장 사무실에서는 그 정도는 충분히 도와줄 수 있다며 어서 오라고 했다.

역시 우리나라 좋은 나라이다.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졌다.

내가 실수해도 그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예전 같았으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을 텐데 이제는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실수 때문에 나 자신을 엄청 몰아세웠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자책하곤 했다.

잊어버리는 게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인 양 나 자신을 몰아세웠다.

내가 잊어버리고 내가 실수하는 바람에 다른 방법으로 그 위기들을 넘겼던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내 잘못만 생각했다.

내가 완벽하게 준비를 하고 완벽하게 일처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삶이 나의 계획대로만 된다면 정말 재미없었을 것 같다.

오히려 나의 계획과 어긋나는 바람에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다양한 방법으로 대처하면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그게 추억이 되었고 즐거운 기억이 되었다.

잊어버린 것에 대해서 자책할 필요는 없다.

잊어버리니까 사람이다.

실수한 것에 대해서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실수하니까 사람이다.

잊어버리고 실수하는 바람에 소설 같은 인생이 되었다.

재미있는 삶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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