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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Dec 15. 2022

자신을 낮추면 사람들이 높여준다


러시아는 겨울에 꽁꽁 얼어붙기 때문에 얼지 않는 항구를 절실히 필요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블라디보스토크처럼 조금이라도 남쪽에 있는 항구를 얻기 위해 굉장히 애를 썼다고 한다.

1853년에서 1856년 사이에는 흑해의 크림반도를 손에 넣으려고 했다.

겨울에도 배를 띄울 수 있는 항구를 갖는다는 것은 러시아의 세력이 커졌다는 사실을 드러낼 수 있었다.

러시아가 강해지면 유럽 여러 나라는 피곤해진다.

그래서 그 당시에도 영국과 프랑스 및 오스만투르크 등이 연합하여 흑해의 크림반도에서 러시아와 일대의 전쟁을 벌였다.

‘크림전쟁’으로 일컬어지는 이 전쟁의 초기에 유럽 연합군은 많은 타격을 받았고 부상자들이 속출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영국의 간호사들이 부상병들을 치료하기 위해 전장으로 떠났다.

그중에는 그 유명한 나이팅게일도 있었다.

그녀는 많은 여성들에게 함께 군인들을 치료하는 일에 동참하자고 호소하였다.




전쟁터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과 막상 전쟁터에서 생활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나이팅게일이 근무하게 된 야전병원은 지옥과 같은 곳이었다.

고함과 신음 그리고 죽음의 침묵이 뒤섞여 있었다.

부상병들은 많은데 의료진들은 턱없이 부족했다.

주변을 정리정돈하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일조차도 맡아서 해줄 사람이 없었다.

수술하고 치료하는 동안에 오히려 오염된 환경 때문에 더 심한 병을 얻게 될 것 같았다.

의료진들은 피곤에 절어서 언제든지 사고를 낼 것 같은 분위기였다.

부상병들은 밤낮없이 의료진들을 부르며 자기를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나이팅게일은 하나씩 정리하고 질서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오염된 곳을 청소하고 환자들의 상태를 파악하여 중증과 경증 환자를 분리하고 소독을 철저히 하는 등의 일들을 펼쳐나갔다.




당시 나이팅게일이 행한 일들은 오늘날에도 의료 현장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일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렇게 수고하고 헌신한 덕분에 부상자들은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죽을 줄 알았는데 회복되어서 야전병원을 나가게 되는 군인들이 많아졌다.

고통이 심한 밤에는 홀로 끙끙대면서 견뎌야만 하는 줄 알았는데 자신의 고통 소리를 듣고 간호사들이 달려오니까 너무나 감격해하는 군인들도 있었다.

한밤중에 야전병원을 향해서 다가오는 등불이 보이면 군인들은 나이팅게일과 그의 동료 간호사들이 오는 것이라 믿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이팅게일로부터 도움을 받은 군인들은 그녀에게 별명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이팅게일을 ‘백의의 천사’ 혹은 ‘등불을 든 여인’이라고 불렀다.

어느덧 나이팅게일에 대한 소식은 영국 본토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이팅게일은 사람들 사이에서 굉장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어느덧 전쟁이 끝나자 나이팅게일도 귀국할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국민들이 자신을 위해 귀국환영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이팅게일은 그게 부담스러웠다.

자신은 그만큼 환영받을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귀국선을 타지 않고 조용히 프랑스로 들어갔다가 사회적인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자기가 한 일을 더 부풀리고 과장하였을 것이다.

자신을 위한 환영회 장소에 자랑스럽게 나타났을 것이다.

그런데 나이팅게일은 오히려 그 반대로 행동했다.

나이팅게일이라고 해서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흠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간호학의 대모’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자신을 낮추고 환자들을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낮추면 사람들은 그를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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