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Jan 06. 2023

밥 한 끼 먹이고 떠나보내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는 스물다섯 늦은 나이에 군 복무를 시작했지만 굉장히 운이 좋은 군번이었다.

운전병으로 지원해서 입대했는데 사실 당시의 내 운전 실력은 면허증만 땄을 뿐이지 자동차를 몰고 길을 달려본 시간은 고작 10시간도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런 상태였으니 논산훈련소에서의 6주 훈련을 마치고 강원도 홍천의 야전수송교육단(야수교)에서 8주의 후반기 교육까지 받아야 했다.

운전 실력이 좋았더라면 후반기 교육 기간을 조금 단축시킬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5월 13일에 입대를 해서 7월 초에 야수교에 입소했다.

거기서 7월과 8월의 한여름을 꼬박 보내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그동안 내 호봉 수는 계속 올라가서 이등병 5호봉이었다.

당시에는 26개월 복무 체계였기에 내가 이등병 생활을 제대로 한 것은 고작 두 달이었다.




내무반에 가면 당연히 내가 맨 막내일 줄 알았다.

그런데 내무반에서 동기 한 명과 대기하고 있던 3일 후에 두 명의 이등병이 더 들어왔다.

입대 날짜가 나보다 3일 늦은 또 다른 동기들이었다.

내무반 전체 인원이 열예닐곱쯤 되었는데 그중에서 4명이 동기였다.

바로 위의 4월 군번이 2명 있었고, 그 위로는 개월 차이가 조금 나는 고참들로 일병 두 명, 상병 한 명이 포진해 있었다.

그리고는 근 열 명 정도가 병장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완전히 풀린 군번이었다.

몇 주 후 내무반에 조금 적응될 때, 곧바로 후임병이 들어왔다.

나보다 20일 정도 후에 입대한 6월 군번이었는데 운전 실력이 좋았는지 후반기 교육을 짧게 받고 자대 배치를 받은 녀석이었다.

나는 곧 일병 계급장을 달았고 내무반 병장들은 하나씩 전역을 했으며 후임들은 계속 들어왔다.

자대 배치받은 지 4개월이 되었을 때 나는 이미 내부반 중간 서열이 되었다.




그때쯤에 우리 내무반에 예상치 못한 사건이 하나 터졌다.

갓 들어온 병사들이 군생활을 힘들어할까 봐서 힘든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님들이 교육 시간에 그런 말씀들을 하셨다.

단순한 교육으로만 끝나지 않고 종이 한 장씩을 나눠주면서 힘든 일이 있었다면 그 종이에 적으라고 했다.

그때 갓 들어온 우리 내무반의 막내 녀석이 그 종이에 몇 글자를 적었다.

고참이 야간 보초 근무 나가면서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이 너무 무서웠던 모양이었다.

그 한 줄의 글이 얼마만큼의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아무도 몰랐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첫 번째 후임인 6월 군번의 김동호 이병이 헌병대에 끌려갔다.

그래도 그 정도는 각오했었다.

소원수리가 접수되었으니 며칠 동안은 영창 갔다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사나흘 후에 그 녀석은 웃으면서 내무반에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갑자기 그 녀석에게 더플백을 싸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다른 부대로 전출간다고 했다.

그 녀석은 눈물을 흘리며 더플백을 쌌다.

우리도 그 녀석과 헤어지는 게 너무나 싫었다.

내무반이 소란스러워지자 대대장님이 직접 찾아오셨다.

고작 작대기 두 개 그은 일병 주제에 나는 대대장님에게 목소리 높여서 항의를 했다.

짐승도 어디로 보낼 때는 밥이라도 먹인다고, 지금 저녁식사 시간인데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먹이고 보내줄 수는 없냐고 했다.

눈물로 호소를 했지만 우리의 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내 첫 번째 후임병은 밥도 먹지 못하고 떠나갔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고 떠나보냈다.

그 만남과 떠남의 시간 사이에서 늘 내 작은 소원이 있었다.

밥 한 끼 같이 먹고 떠나보내면 좋겠다는 것이다.

밥이라도 같이 먹어야 보내는 마음이 홀가분할 것 같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정말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자존감이 밑바닥으로 떨어질 때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