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존감이 밑바닥으로 떨어질 때가 있다

by 박은석


나는 자존감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어지간하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기가 죽지 않는다.

남들이 뭘 잘한다고 하면 나는 속으로 ‘그 정도의 일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품는다.

설령 어떤 물건이 고장 나거나 이상 증세가 있을 때면 나는 사람이 만든 물건은 사람이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 물건을 뜯어보고 이리저리 매만지면서 고쳐보려고 한다.

재빠르게 인터넷 검색을 해서 모르는 부분은 보충하기도 한다.

그 덕분에 자동차의 사소한 문제들은 내 손으로 해결하고 컴퓨터는 툭하면 다 뜯어내서 업그레이드시키곤 한다.

처음 뜯어낼 때는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두 번, 세 번 하다 보면 재미있는 작업이 된다.

내가 뭘 뜯어서 고친 것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 집 양변기이다.

자꾸 막히기에 안에 뭐가 있나 해서 뜯어봤다.

아기 장난감 하나 꺼내고서는 손시멘트를 발라서 깨끗하게 바닥에 부착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손재주가 뛰어난 편은 아니다.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일을 벌였고 때로는 사람을 부르는 게 돈이 아까워서 내가 직접 시도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어찌 문제를 해결하면 내 아내와 딸과 아들이 “우와! 역시 아빠야!”하는 식으로 감탄사를 발사한다.

그러면 나는 “뭐 이런 일을 가지고...”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을 한다.

속으로는 무척 뿌듯하면서도 말이다.

이런 일이 몇 번 쌓이다 보니까 이제는 집에 뭔가 고장이 나면 내가 어련히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 눈치이다.

그러니까 나는 우리 집의 맥가이버이다.

성이 박씨니까 박가이버라고 불린다.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아빠에게 맡기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집에서만 이러는 게 아니라 밖에서도 이렇다.

남들이 귀찮아하는 일을 도맡아 하는 성격이다.

그러니까 여러 모임에서 만년 총무 역할을 하고 있다.

총무를 그만두면 회장이다.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외향적인 성격인 줄 안다.

에너지가 넘치고 모임의 분위기를 띄워주고 궂은일도 알아서 척척 해주니까 여러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

내 성격을 부러워하는 이들도 많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도 나 자신을 바라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내가 자존감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나의 비밀스러운 모습이 있다.

사실 나는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남들이 그런 나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혼자 있는 걸 즐기며 사람들 눈을 피해서 숨고 싶을 때가 많다.

숨을 데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내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는 가면을 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가 주머니에 가면을 넣고 다니는 것은 아니고 내 마음의 가면을 꺼내는 것이다.

좀 유식한 척하면 ‘페르소나’를 쓰는 것이다.

나의 페르소나, 나의 가면은 항상 환하게 웃고 있다.

자존감 충만한 모습이다.




그러나 나도 자존감이 밑바닥으로 떨어질 때가 있다.

페르소나는 웃고 있지만 진짜 내 모습은 일그러진 채로 울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은 예고도 없이 급작스럽게 찾아온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할 때가 그렇다.

상대방의 부와 명예와 건강 같은 것을 수치화해서 나와 비교해 본다.

그 순간 자존감이 수직으로 하강한다.

지금의 내가 무능해 보이고 지금의 내 상황이 부끄러워진다.

미래를 생각하면 한숨만 나오고 빨리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안달을 한다.

작은 이익에도 욕심을 내며 성질을 참지 못하고 분노를 쏟아낸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계속 ‘내가 왜 이럴까?’라는 말만 반복한다.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하고 상대방이 잘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면 좋은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상대방을 나의 비교 대상으로 봐 버린다.

그 순간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나의 자존감은 산산조각이 나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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