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세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내 건강 상태를 체크해보고 있다.
내가 건강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병원에서 오라고 하니까 가는 거다.
4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이제는 건강에 신경을 쓸 나이라고 하기에 그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수치로 나타난 건강지표가 나에게 이제는 맘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후로 몇 년째 단골 가게를 찾아가는 것처럼 병원을 찾아간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의사 선생도 이제는 친근한 친구처럼 여겨진다.
얼굴을 보면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인다.
그래도 의사 선생을 만나는 것은 굉장한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지난 두세 달 동안 내가 물 잘못하지는 않았는지 검사를 받는 기분이 든다.
의사의 입에서 전보다 좋아졌다는 말이 나오면 내 기분이 좋고 전보다 안 좋아졌다는 말이 나오면 내 기분도 안 좋다.
그의 입술의 말에 내 기분이 달라진다.
오늘은 의사가 좋은 말만 했다.
전보다 좋아진 것 같으니까 콜레스테롤 점검차 피 검사도 해보자고 했다.
나는 피 검사를 하는 김에 아예 그간 미뤄왔던 건강검진을 받겠다고 했다.
어차피 12시간 넘게 물 한 모금도 안 마시고 음식도 안 먹은 공복 상태였다.
검사를 받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갑작스러운 나의 선택에 병원 측에서 바빠졌다.
곧 점심시간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 이렇게 급작스럽게 검사받으니까 좋은 면도 있다.
나를 특별 대우해주는 것 같았다.
문진표를 작성하는데 간호사들이 적극 협조해 주었다.
그 시간에 건강검진받는 사람이 없으니 빨리 나를 끝내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나로서는 특별 대우를 받는 것 같으니 기분 좋은 일이었다.
위 내시경 검사 같은 까탈스러운 것은 특별한 이상 증세가 없으니 나중에 받으면 어떻겠냐고 물어보기에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일사천리로 검사를 받았다.
본격적인 검사에 앞서서 문진표를 작성하는데 어떻게 된 것이 나에게 건네준 문진표가 이상했다.
치매 검사를 물어보는 문진표였다.
최근에 무엇을 두었는데 그 사실을 잊어버린 적이 이는가? 자주 그렇다, 그렇다, 보통이다.
아니다.
이런 질문 같은 것들이 한 장 가득이었다.
순간 '나를 뭐로 보고 이런 문진표를 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문진표가 나에게 해당되는 것이냐고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봤다.
얼마 전에 치매를 앓던 아내를 떠나보낸 분을 만났었다.
아내가 굉장히 똑똑했고 서울에 있는 유명 대학교의 도서관장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20년 전에 치매 증세가 발병되었다고 했다.
그때 그분 아내의 나이는 갓 오십이었다고 했다.
그러니 나이 오십이 되면 치매 검사를 하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측에서 다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정한 것이라 믿는다.
인쇄된 문항에 표시를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지만 치매 검사를 해보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나도 마냥 어린아이처럼 촐랑촐랑 뛰어다닐 나이가 아니란 사실이 마음 깊이 느껴졌다.
나는 아직 괜찮다는 생각이 나도 언젠가는 안 괜찮아질 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좋아질 수는 없고 더 안 좋아지기만 할 것이다.
하루라도 더 안 좋아지기 전에 더 좋은 일들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스트 시대를 겪고 살아남은 이들에게서 보여졌던 현상 중 하나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자는 삶의 태도였다고 한다.
아등바등거리며 살아보았자 한순간에 훅 가는 인생인데 너무 아쉽게 생을 보내지 말고 순간순간 잘 누리며 살자는 생각이었다.
나도 내 몸이 더 약해지기 전에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더 잘 누리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치매 검사를 하면서 가졌던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