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Jan 09. 2023

헛된 인생이라는데 헛되지 않은 것 찾기


러시아 문학가 고골리의 단편 소설 <외투>를 보면 19세기 당시 러시아 소시민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한 달의 월급을 모아도 외투 한 벌 사기가 수월치 않았다.

러시아의 겨울은 굉장히 매서울 텐데 외투가 한 벌도 없으면 겨울이 무척 혹독스러울 것이다.

뻬쩨르부르크의 한 관청 직원인 아카키예비치가 그런 사람이었다.

직급이 높지 않았던 그는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다.

융통성도 없고 처세술도 없는 초라하고 볼품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지 간에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만족했다.

그 일이라는 것이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저 하루종일 서류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에게 심각한 고민거리가 생겼다.

머지않아 겨울이 다가올 텐데 그에게 있는 외투는 너무 낡아서 입을 수 없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새 외투를 장만하려면 넉 달 동안의 월급을 꼬박 모아야 했다.




아카키예비치는 몇 달 동안 밤에 촛불도 켜지 않고 지냈다.

식사도 툭하면 걸렀다.

그렇게 지독하게 아끼며 살았다.

드디어 외투 한 벌 살만큼 돈이 모이자 그는 과감하게 새 외투를 샀다.

새 외투를 입은 그는 날아갈 듯이 기뻤고 온몸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 모습을 본 그의 상관은 그에게 저녁식사까지 대접해 주었다.

그런데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만 강도를 만나서 외투를 빼앗기고 말았다.

아카키예비치는 반미치광이처럼 외투를 찾기 위해 뛰어다녔다.

경찰서장과 유력한 인사들을 찾아가 외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청도 해 보았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호된 거절과 호통밖에 없었다.

자신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외투인데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반응에 크게 낙담한 아카키예비치는 결국 병이 나서 시름시름 앓다가 곧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읽다보니 ‘인생이 참 헛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카키예비치의 인생 목표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는데 달랑 외투 한 벌을 얻는 것이었다.

좀 고상하고 수준이 높은 것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고작 외투 한 벌이었다.

그에게 외투 한 벌이 쥐어지자 그는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기뻐하였다.

하지만 외투를 빼앗기고 나자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좌절하고 말았다.

좀 힘들겠지만 잃어버린 것은 다시 구하면 될 텐데 그는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그 한 벌의 외투가 마치 자신의 인생 전체인 것처럼 여기고 있었다.

한 편에서는 불쌍하고 한 편에서는 답답해 보였다.

그런데 사실, 내가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일들도 어쩌면 한 벌의 외투를 얻는 것같은 일들이다.

그 소원이 이루어지면 너무나 행복해하고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굉장히 속상해한다.

외투가 마치 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말이다.




제아무리 갓 구입한 외투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고 여기저기 구멍도 생긴다.

시간이 지나면 세상도 변하고 상황도 변하고 외투도 변한다.

지금은 새것이지만 머지않아 낡은 것이 된다.

그런데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 그 한복판에서 우리는 변하지 않으려고 용을 쓰곤 한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수영을 할 줄 몰라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이 다 헛되다고 했다.

우리 조상들도 인생이 무상하다고 했다.

잠깐 왔다가 순식간에 지나간다고 했다.

이러나 저러나 한평생이라며 허사가를 노래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인생살이가 다 헛된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에게 헛되지 않은 일도 분명히 있다.

세월이 20년, 30년이 지나더라도 그때를 생각하면서 ‘참 잘했다’고 흐믓해할 일이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까 아카키예비치에게 소중하고 헛되지 않은 게 외투였던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의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