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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an 16. 2023

모든 책임을 지는 천사 같은 사람

중고등학생 때, 선생님 몰래 수업시간에 책을 읽곤 했다.

책상 밑 무릎 위에 책을 올려놓고 선생님이 칠판에 필기를 할 때 재빨리 고개를 숙여서 책장을 한 장씩 넘겼다.

걸리면 혼날 게 뻔한데 들키지 않으려고 눈치껏 읽어야 하는 그 스릴을 즐겼다.

선생님들께서 어릴 때 읽은 책은 평생을 간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때 그렇게 읽었던 책들은 강산이 몇 번 변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그림처럼 남아 있다.

토마스 하디의 <테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 펄 벅의 <대지> 같은 책들이 그때 읽었던 책들이다.

나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해주셨던 고등학교 수학선생님 가가멜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아마 그때 내가 수업에 너무 몰두했더라면 주옥같은 작품들을 읽을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 읽었던 책들 중에 나다나엘 호손의 <주홍글씨>도 있다.




<주홍글씨>보다는 <주홍글자>가 맞는 표현이라고 하는데 당시 내가 읽은 책의 제목은 <주홍글씨>라고 번역되어 있었다.

그 책의 제목이 내 마음에 각인된 이유는 주인공 헤스터의 가슴에 평생 알파벳 ‘A’자를 새기고 살아야 했다는 내용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 동네 아저씨들이 소의 엉덩이에 낙인을 찍는 장면을 보았는데 그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오도 가도 못하는 틀 속에 소를 집어넣고 벌겋게 달군 인두를 소의 엉덩이에 갖다 댔다.

소는 발버둥을 치면서 울부짖고 아저씨들은 소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꽁꽁 옭아 묶은 줄을 당겼다.

소의 살갗을 태우는 연기와 함께 살이 익어가는 노릿한 냄새가 어우러지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너무 끔찍했다.

만약 저 인두가 내 살에 닿는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하는 생각을 하며 바라보았던 경험이 있다.

그 경험 때문인지 나는 주인공 헤스터의 가슴에 인두로 ‘A’자를 새긴 것으로 읽었다.




내 머릿속에 그려놓은 헤스터는 착하고 예쁜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의 가슴에 인두로 A자를 새겨놓는다니 정말 짐승과도 같은 사람들이라고 맹비난을 했었다.

그런데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세히 보니까 헤스터의 가슴을 인두로 지진 것이 아니라 그녀의 웃옷 위에 ‘A’자를 달고 다니게 한 것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그나마 몸을 상하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평생 가슴에 ‘A’자를 달고 다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에 인두로 지진 것이 훨씬 나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랬으면 옷으로 가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들에게 훤히 보이도록 커다란 글자를 달고 다녀야 했던 헤스터는 무척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글자는 간통(adultery)을 저지른 여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17세기의 미국은 엄격한 청교도 사회였기에 간통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죄였다.

그런 죄인은 평생 비난과 조롱을 받아야 했다.




남편은 먼 곳으로 떠나서 생사도 알 수 없었다.

여성이 혼자서 살아가기에는 너무 힘든 사회였다.

하지만 법적으로 엄연히 남편이 있는데 다른 남자를 사귀면 안 되었다.

차라리 남편이 죽었다면 헤스터는 딤즈데일 목사와 아무 제약 없이 결혼을 할 수 있었다.

견딜 만큼 견뎠다.

남편이 사망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딤즈데일 목사를 사랑했고 아이를 가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냉정했다.

그녀에게 간통죄를 내렸고 상대방 남자가 누구냐고 추궁했다.

그 남자를 사회에서 매장시키려 한 것이다.

헤스터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가슴에 평생 A자를 달기로 선택했다.

그녀의 가슴에 새겨진 A는 어쩌면 모든(All) 책임을 뜻하는 A였는지 모른다.

후에 사람들은 그녀를 천사와 같다고 했다.

그녀의 가슴에 새겨진 A는 어쩌면 천사(Angel)의 표시였는지도 모른다.

헤스터는 모든 책임을 지는 천사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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