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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an 11. 2023

평생토록 배워야 한다


우리 시대는 평생교육의 시대라고 한다.

과거 농경문화가 주 생활이었을 때는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더 이상 배울 게 없었을 것이다.

일 년 사계절 열두 달이 주기를 따라 돌아가기 때문에 몇 년 동안 고생을 하면 사시사철의 변화를 알 수 있었다.

그 변화에 따라서 언제 씨를 뿌리고 언제 추수를 할 것인지도 예측할 수 있었다.

하늘의 변화를 보면서 비가 올지 눈이 올지 가늠할 수 있었고 바람의 방향을 보고서 날씨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때는 나이 많은 사람이 어른으로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아무리 연약해 보이더라도 나이가 많으면 일단 그 나이에 맞는 지혜와 지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른 앞에서는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어른들의 말은 진리처럼 받아들였다.

토를 달거나 말대꾸를 할 수조차 없었다.

이러이러한 일을 하라고 하면 그 일을 해야만 했다.

그때는 나이 많은 어른들이 최고의 지혜자였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어른들의 지식과 지혜가 더 이상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지 못하는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농사를 지을 때는 어른들의 지혜가 필요했지만 공장에서 기계를 돌릴 때는 어른들의 지혜는 별로 영양가가 없었다.

오히려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서 배워야 했다.

새로운 물건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디에 쓰는 물건이고 작동을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워야 했다.

수십 세기를 이어져온 어른들의 경험과 지혜가 무용지물이 돼 버렸고 그 대신에 새로운 지혜와 지식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더 똑똑하다는 평을 듣게 되었다.

손안에 들린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모습만 보더라도 누가 지혜로운 자인지 확연히 알 수가 있다.

젊은이들은 두 손으로 자유자재로 스마트폰을 매만진다.

반면에 어른들은 검지 손가락 하나로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의 화면을 눌렀다 뗐다 한다.

마음은 잔뜩 긴장하면서 말이다.




그만큼이라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어른들은 꽤 많은 지식과 지혜를 쌓은 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의 기능을 모조리 알아가려면 굉장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마트폰의 기능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시도를 멈추게 된다.

100만 원이 넘는 거금을 들이면서 구입한 스마트폰이지만 고작 전화기 용도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스마트폰의 기능들을 배워야 하는데 새로운 것을 배울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게 살아왔는데 까짓것 굳이 배워야 하느냐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살아감에 전혀 불편이 없는데 새로운 것을 꼭 배울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분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굳이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가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려면 그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는 젊은 사람 앞에서 자존심도 많이 상한다.




그러나 매일 매 순간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고 새로운 것을 보면 고쳐보고 싶은 욕망이 속에서 꿈틀거린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면 하루만큼의 지식이 새롭게 생겨는 세상이다.

어제까지의 지식과 지혜가 제아무리 출중하다 하더라도 오늘의 지식과 지혜는 오늘의 도화지에 써내려가야 한다.

그 하얀 도화지에 나의 지식과 지혜를 총망라하는 글을 쓰더라도 다 채울 수가 없다.

그런데 새로운 지식들이 대기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만큼 배웠으니까 이제는 됐다고 할 수도 없다.

과거에 배우고 쌓아온 지식들이 더 이상은 쓸모없는 유산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배워야 한다.

나날이 새로운 것에 맞닥뜨리게 되니까 매일 새로운 지식을 배워야 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다.

배움의 현장에서 나이의 한계, 지식의 한계 같은 것은 일찌감치 사라져 버렸다.

어느 만큼 배워야 한다는 기준도 없다.

그냥 평생토록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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