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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27. 2020

삼국지의 유비에게 다시 반했다


삼국지를 처음 읽었을 때 유비에게 뿅 반했었다. 

‘어쩌면 저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신의를 지키고 덕을 베풀며 살 수 있을까? 나도 유비처럼 덕을 베풀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었다. 


순 망나니 같은 장비를 쩔쩔매게 하고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관우로부터도 형님이란 소리를 듣고, 당대 최고의 지략가인 제갈량의 마음을 빼앗은 유비가 그렇게 멋있게 보일 수 없었다. 


나를 계발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책들을 읽으면서도 마음으로는 ‘유비처럼, 유비처럼’을 되뇌었었다. <한비자>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으면서도 ‘뭐 이런 냉혈한 같은 지도자들이 있나’라며 혀를 끌끌 찼었다.

그때에도 내 마음에는 ‘지도자라면 당연히 유비처럼’이라는 생각이 확고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착하게 덕스럽게 사는 사람이 최종적으로 승리해야 하는데 삼국지의 결말은 그렇지가 않았다. 

유비의 나라는 위, 촉, 오의 삼국 중에서 제일 작았고, 무너져가는 나라를 회복시키고자 했던 유비의 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교묘하고 간사한 자가 득세를 하고, 유비처럼 덕을 베풀기 좋아해서는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삼국지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온 지난 세월을 봐도 그렇고, 지금 살아가는 세상을 봐도 그런 것 같다. 어질고 의롭고 착하고 덕스럽게 사는 사람은 미련 곰탱이 같아서 남에게 이용당하기 딱 알맞게만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들은 다 한 몫씩 건지는데 덕을 베풀기 좋아했던 사람들은 자기 실속도 차리지 못한 채 오히려 조롱거리가 되기도 한다.


이번에는 삼국지를 보면서 유비 말고 다른 사람을 유심히 살펴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여전히 유비가 마음이 끌린다. 그래... 나는 어쩔 수 없는 유비파인가 보다. 곧 죽어도 유비 편에 서고 싶은 마음이다. 


10년 넘게 활동하였으면서도 변변한 성 하나 얻지 못한 유비. 형주 땅 유표의 배려로 조그만 성 신야에 얹혀서 살았던 유비였다. 유표가 임종을 앞둘 때 조조의 50만 대군이 몰려왔다. 제갈량의 권고로 유비는 급하게 강하로 피난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신야의 백성들이 유비를 따라가겠다고 한다. 무려 18만 명이나. 

그 느려터진 백성들과 보조를 맞추다가는 조조에게 잡아먹힐 텐데. 그리고 전쟁 중에 18만 명의 백성들을 어떻게 먹이고 재우고 보호할 수 있겠는가? 정상적인 생각이라면 백성을 버리고 가야 한다.


그런데 유비는 달랐다. 

“백성은 나를 버려도 되나 나는 백성을 버릴 수 없다.” 


아. 이 사람 유비 정말, 얄밉게도 멋진 말만 골라서 한다. 이 말에 감동받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내가 꿈꾸던 지도자의 모습이 바로 이 모습 아닌가? 

나에게 속한 사람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는 그 마음이 바로 지도자의 마음이다. 


모양은 다르지만 우리 모든 사람은 다 지도자이다. 

국가의 공직을 맡는 지도자도 있고, 일터에서 직원들을 거느리는 지도자도 있다, 친목 모임이나 소그룹의 지도자이면서 또한 부모로서 가정의 지도자이기도 하다.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아버지라는 지도자는 가정에서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라고. 

그때 나는 “아버지는, 이 생명 다 바쳐서 가족들을 지키고 살리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였다. 


삼국지의 유비에게 반해서 나도 몰래 터져 나온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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