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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28. 2020

내 인생을 확 바꿔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초등학생 때는 만화영화 주인공처럼 몇 마디 주문을 외우고 제자리에서 빙그르 돌면 휘황찬란한 빛이 나오고 나도 멋있는 모습으로 변하는 줄 알았다. 그러면 악당들을 물리치고 나를 괴롭히는 녀석들도 혼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데 막상 해 보니 어지럽고 내 머리만 아팠다.


어깨에 망토를 두르면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모아놓은 보자기를 몰래 꺼내서 목에다 매고 담벼락에 올라 오른팔 높이 쳐들고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꽝! 땅으로 추락했다.


스파이더맨 가면을 쓰면 갑자기 힘이 세지고 손목에서 거미줄이 뿅뿅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얼굴만 답답할 뿐 거미줄은 눈곱만큼도 안 나왔다.


무엇인가 시도할 때마다 매번 실패했지만 다음에는 분명히 변할 거라는 환상을 꿈꾸었다.




중학생 때는 투명인간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시험공부를 못했더라도 선생님 몰래 교과서를 들춰서 정답을 맞힐 수도 있으니까 투명인간 망토만 있으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망토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적나라하게 다 노출되었다. 시험시간에 몰래 교과서를 보다가 들켜서 선생님께 흠씬 따귀나 얻어맞았다.


투명인간은 어차피 안 되는 것이니까 그러면 빨리 어른처럼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도 마음대로 볼 수 있을 것이었다.


연습 삼아서 전화번호부를 뒤져 선생님 댁에 전화를 걸었다. 사모님이 받으시기에 목소리를 최대한 굵게 하고서는 “나 OOO이 친구인데 집에 있으면 좀 바꿔주세요.” 했다.

순간 사모님이 “너 학생이지?”하고 물으셨다.

들켰다.

놀란 가슴에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아무리 노력했지만 나는 조금도, 하나도 안 변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이제는 내가 변할까 겁이 난다.

만약 내가 변하더라도 어렸을 때처럼 뭔가 대단한 존재로 변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몹쓸 질병에 걸리면’, ‘식구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세상을 떠나가면’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만 퍼뜩 떠오른다.


프란츠 카프카는 <변신>이라는 소설에서 어느 날 갑자기 벌레의 몸으로 변해버린 한 사내의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벌레가 된 사내의 소원은 예전처럼 그냥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지긋지긋한 자신의 인생이 확 변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에게 카프카는 변하는 것이 꼭 좋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때 선택을 잘했으면 변했을 것이라는 사람들에게 로버트 프루스트는 <가보지 못한 길>이란 시에서 그 길이라고 크게 달랐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만약 내가 지금의 나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면 나는 아내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매일 힘과 용기를 주는 토끼 새끼 같은 딸과 아들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 다른 인생에도 웃음과 행복이 있겠지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민과는 다른 고민을 안고 있었을 것이다.


가끔 아내가 묻는다. “그때 나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다른 사람 만났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인생에는 ‘행복 보존의 법칙’이 있어서 한 때 행복하면 또 다른 한 때는 불행하기도 하겠고, 힘든 날이 지나가면 기쁜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이 싫을 때가 있다.

확 바꿔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의 인생도 괜찮다.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지금이 딱 좋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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