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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an 24. 2023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길, 가장 좋은 길


자동차 점검을 하기 위해서 집 근처에 있는 카센터로 출발했다.

이제 막 골목으로 우회전하면 되는데 주차해 있던 왼쪽 앞에 차량이 갑자기 후진을 했다.

그 차를 피하느라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꺾었는데 그 순간 자동차가 뱅그르르 돌았다.

순간 ‘아 박았다!’라는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간밤에 내린 눈 때문에 도로가 꽁꽁 얼어 있었다.

지금까지 눈길 운전을 할 때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었다.

운전병 출신이랍시고 운전에 대해서는 자부했었다.

그런데 한순간에 내 집 앞 골목길이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길이 되고 말았다.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운전대를 꼭 잡은 채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지 않고 자동차가 돌다가 멈추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좁은 골목에서 거의 한 바퀴 돌고 멈췄다.

옆에 주차해 있었던 차량들을 한 대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게 기적 같았다.

죽음의 길을 겨우 벗어난 기분이었다.




집에 와서 생각난 김에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길이 어디일까 찾아보았다.

중국의 후아산길이 보이길래 역시 중국은 이런 데서도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의외로 스페인에도 죽음의 길이 있었다.

왕의 오솔길이라는 곳인데 보수 공사가 안 되어 있어서 절벽 위에 있는 길이 숭숭 구멍이 뚫려 있었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하프돔은 거의 수직으로 올라가야 하는 등산길이었다.

해마다 여러 대의 자동차와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볼리비아의 북 융가스 도로도 있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사진만 봐도 오금이 저렸다.

나 같으면 돈을 주고 가 보라고 해도 절대로 가지 않을 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담력을 시험하기 위해서 그 길을 간다.

산악인들 중에서는 그런 길을 버킷리스트로 정해놓기도 한다.

그런데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서 그 길을 간다.

그들에게 다른 길은 없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매일 보는 풍경이기에 낯설지도 않을 것이다.

익숙한 길일 것이다.

어느 만큼 가면 뭐가 나오는지 훤히 다 알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길, 자신에게 익숙한 길이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길이라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껏 걸어온 나의 인생길도 그랬다.

나에게 생소한 길이었을 때는 조심히 걸었다.

지도도 여러 번 살펴보고 옆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잘했다.

그러다가 어느덧 나에게 익숙한 길이 되어버리면 아무에게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 길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다.

자신 있게 가속 페달을 밟았고 의기양양하게 출발했다.

그 길이 곧 막히고 사고가 나고 긴 시간을 들여서 돌아가야 할 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장 안전하다고 여긴 길이 가장 험난한 길이 되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랬다.

알던 사람, 믿던 사람이 나에게 가장 많은 아픔을 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길은 멀리까지 가야만 볼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매일 지나다니는 내 집 앞 익숙한 길이 가장 위험한 길이다.

잘 안다고 하면서 둘러보지 않는 길, 자신 있다고 하면서 방심하는 길, 내가 달려가면 알아서 피해 주겠지 하면서 뛰쳐나가는 길, 그 길이 가장 위험한 길이다.

좋은 길과 위험한 길은 따로 있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하는 그 길들도 처음 놓였을 때는 ‘이제 안전하게 여기에서 저기까지 갈 수 있겠구나!’하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 길이 위험한 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은 길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원래부터 그런 길이었고 새롭게 고치기도 힘든 길이다.

그러니 그런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그 길에 맞춰야 한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마음으로 한 발짝씩 건너다보면 마침내 그 길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길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길이 될 것이다.


<사진 출처 : http://parklanda.tistory.com/15849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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