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Jan 26. 2023

고구마를 보면 감자 생각이 나고 추억이 생각난다

집에 군고구마가 있길래 하나 집어 먹었다.

맛있다.

찐고구마도 맛있지만 군고구마만 한 달짝함은 없다.

더욱이 군고구마에게서 묻어나는 추억은 없다.

어릴 적 겨울철이면 친구들과 함께 모닥불을 피워놓고 고구마 몇 알을 그 속에 던져 넣었다.

타닥타닥 나무가 타고 어느새 구수한 냄새가 날 때면 빨간 숯들을 헤치고 그 안에 검게 타들어가는 고구마를 꺼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그것을 입으로 호호 불어가면서 한입 깨물어 먹었다.

볼때기는 추위와 모닥불에 발갛게 달아올랐고 입술은 군고마에 검댕이가 되었었다.

그렇게 배불리 먹고 나면 또다시 추수가 끝난 밭에서 뛰놀곤 했었다.

지금에야 아이들을 밭에서 뛰놀게 만들지도 않고 더군다나 아이들이 불을 놓고 고구마를 구워 먹게 만들지도 않는다.

자칫 아이들이 불장난이라도 하면 난리가 난 듯 야단을 칠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그 모든 게 자유로웠다.




가난한 시절에는 즐거운 놀이였는데 지금은 위험한 짓이 되었다.

지금은 넉넉한 세상이니까 아이들이 직접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 안 되는 것 같다.

달라고 하면 주는데 왜 불을 피우냐는 것이다.

불이 얼마나 위험한데 불을 지피냐는 것이다.

덕분에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내기는 하겠지만 친구들과 함께 불을 다루었던 추억은 물려줄 수가 없게 되었다.

고구마를 구울 때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게 감자였다.

주먹만 한 동그란 게 어디서 굴러왔는지 꼭 그 자리에 끼었다.

감자를 보면 아이들은 둘이 손을 맞잡고 가위바위보를 하듯이 놀이를 했다.

“감자에 싹이 나서 이파리에 감자!” 지역에 따라 놀이 구호가 조금씩 다르지만 ‘감자에 싹이 나서’는 동일한 것 같다.

아이들에게 감자는 맛있는 간식이라기보다 배를 채우는 먹거리로, 또 놀이의 단골손님으로 더 친숙했다.

나도 감자와 고구마 중에서 택하라고 하면 고구마였다.




고구마와 감자가 같이 나오면 아이들은 또 하나의 장난을 치곤 했다.

어느 게 감자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누구는 고구마를 감자라고 하고 누구는 감자를 감자라고 했다.

누구는 고구마를 감저라고 하고 누구는 감자를 지실(地實)이라고 했다.

또 누구는 지실이라고도 했다.

가끔 야채를 팔러 오는 아저씨도 아줌마도 “감자나 지슬 삽서예!”라고 외치곤 했다.

내 고향 제주도에서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때 거기서는 고구마를 감자라고 불렀고, 감자를 지실이나 지슬이라고 불렀다.

한동안은 그 말이 사투리인 줄 알았다.

그래서 서울살이를 하면서는 지실이라는 말, 지슬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촌티 나는 말은 내 입에서 나오지 않게 하려고 했다.

그러던 언젠가 오래된 책을 보다가 그 책에서 감자를 지실(지실)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감자나 고구마를 통칭해서 ‘감저’라고 불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 내가 알고 있는 말이 사투리가 아니었구나.

옛날에는 이 말이 표준어였겠구나!’ 그도 그럴 것이 감자가 땅 속에서 나온다고 여겼기에 옛날 사람들은 땅의 열매라는 의미로 지실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감자가 우리 땅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고구마는 있었다.

사람들은 고구마를 감저라고 부르기도 했다.

고구마도 땅의 열매이니까 지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감자가 들어오니까 이 녀석을 무엇이라 부를까 고민하는 사이에 감저라고도 부르고 지실이라고도 부르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 녀석을 ‘감자’라고 부르기로 했을 때는 이미 여러 말로 그 녀석을 부르고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지실이나 지슬이었다.

감자는 1832년에 충남 보령 근처의 고대도에 잠깐 들렀던 칼 귀츨라프라는 독일인 선교사가 전해주었다고 한다.

먹거리가 귀했던 시절에 정말 고마운 식물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흐뭇한 추억이었다.     

++사진 출처 : 과학향기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길, 가장 좋은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