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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an 31. 2023

마스크 벗었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니다


밤 열 시에 집 앞 편의점에 갔다.

아이들 간식거리를 사려고 나선 것이었다.

먹자골목은 회식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내가 편의점에 들어서기 전에 휘청거리면서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두엇 있었다.

순간 움찔했다.

모두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어제부로 실내 마스크 의무화가 해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해제한다고 하더라도 당분간은 마스크를 착용할 줄 알았다.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을까?

편의점 안에 예닐곱 명은 있었는데 딱 두 명만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편의점 알바생도 시원하게 마스크를 벗고 계산대에 서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이 되레 어색해질 판이다.

하루 사이에 이렇게 풍경이 달라져 버렸다.

하기는 그동안 얼마나 마스크를 벗고 싶었을까?

자신의 맨얼굴을 드러내놓고 싶었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이제 그들 모두가 자유를 찾은 것 같다.




그러나 매일 지자체에서 알려주는 코로나 확진자 숫자는 여전히 많다.

그 많은 확진자들이 치료를 제대로 받고 있는지, 더 심각해지지는 않고 있는지, 이제는 이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3년 전에는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명씩 발생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집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그때와 지금은 판이하게 다르다.

지금은 코로나 확진자가 옆에 있다고 해도 그러려니 하면서 지낸다.

설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겠냐는 강한 자신감이 있다.

그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왔으니 이제는 밝은 길만 갈 것 같다.

지난 3년 동안 숨죽이며 지냈으면 됐다.

어쨌든 살아남았다.

사람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살아남았으니까 이제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일리가 있다.

군인들도 전투에서 살아남으면 휴가를 즐긴다.

수험생들도 시험에서 살아남으면 자유를 만끽한다.

살아남은 자의 특권이다.




14세기에 흑사병을 견뎌냈던 유럽사회는 대변혁의 시대를 맞이했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흑사병으로 목숨을 잃을 정도로 흑사병의 피해는 엄청났다.

모든 사회가 폐허가 되었다.

하지만 흑사병이 지나고 나니까 다시 사람이 살아갈 세상을 만들어야 했다.

여기저기서 재건운동이 일어났다.

집을 수리하고 건물을 고치고 마을을 단장하고 도시를 정리해야 했다.

그런데 그 많은 일들을 하기에는 일할 사람이 턱없이 부족했다.

농지에는 농사를 지을 농부가 필요했는데 숙련된 농부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졌다.

인건비가 올라갔고 차곡차곡 돈을 모은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켰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은 문화생활을 즐겼다.

아등바등 살아도 흑사병이 한번 스치면 끝나버리는데 그럴 바에는 실컷 즐기자는 생각이 팽배했다.

그 결과 문화 예술이 크게 발전하였다.

르네상스의 시대가 다가온 것이었다.




전염병이 두려운 것은 분명하지만 나쁜 것이라고 선을 그을 수는 없다.

따지고 보면 전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도 자기들의 살길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우리가 바이러스를 두려워했던 것 못지않게 바이러스도 인간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어쩌면 바이러스는 인류와 같이 살고 같이 죽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전염병으로 인해서 인류는 대재앙을 맞이했지만 전염병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섰을 때에는 엄청난 문명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 시대도 그렇게 되리라 생각한다.

분명히 우리는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또 어떻게 보면 코로나가 많은 유익을 주기도 했다.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활보하게 되었다고 해서 코로나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스크 벗었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코로나로부터 배운 것을 잘 살려서 멋진 인생을 살고, 멋진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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