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에는 정치인들 사이에 당파에 따른 갈등이 매우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그런데 당시에 남인의 거물급이었던 정경세는 자신의 막내딸을 위한 배필로 서인의 젊은이를 맞아들였다.
정경세는 퇴계 이황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었고 그의 사위인 송준길은 율곡 이이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었다.
당시에는 학문의 길이 다르면 서로 대립각을 세우던 때였기 때문에 자신의 딸을 다른 학풍의 가문에게 시집보내는 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왜 하고 많은 사람 중에서 서인 집안으로 시집을 보내느냐고 물었을 때, 정경세는 “나는 사윗감으로서 사람의 됨됨이를 볼 뿐이지 눈의 빛깔(색)을 보지 않는다”라고 대답하였다.
정경세는 당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었지만 그가 사위로 맞아들인 송준길도 만만치 않은 젊은이였다.
송준길은 후에 서인의 대표가 되는 우암 송시열과 친인척 관계에 있었다.
어쨌든 사위인 송준길은 결혼에 대해서 선뜻 내키지 않았던 것 같다.
한양에서 처가인 경상도 상주까지 가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혼례를 치르면서 신부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는데 자신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애써 안색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신부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신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성심성의껏 신랑에게 예를 다할 뿐이었다.
어느덧 여러 날이 지나 신랑이 본가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는 신랑에게 신부가 음식이 든 바구니를 건네면서 부탁했다.
“먼 길을 가셔야 하니 조촐하나마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가시는 중에 아무 데서나 음식을 드시지 마시고 경치가 빼어나게 좋으면서 맑은 샘물이 있는 곳에서 드십시오. 경치가 뛰어난데 마실 샘물이 없거나 샘물은 있지만 경치가 보잘것없는 경우에는 절대로 이 바구니를 열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송준길은 신부의 부탁에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는 한양으로 힘껏 말을 몰았다.
도중에 경치가 좋은 곳이 여러 곳 있었지만 샘물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마실 만한 물이 있는 곳에는 경치가 보잘것없었다.
그렇게 여러 산과 마을을 지나는 동안 점점 배가 고파왔다.
송준길은 빨리 경치가 좋고 마실 물이 있는 곳을 찾아 음식을 먹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장소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비로소 송준길은 자신의 부인이 무슨 뜻으로 그 바구니를 건네줬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부인에게 얼마나 철없는 행동을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송준길에게 “남자들은 아름다운 외모와 덕과 지혜를 갖춘 여인을 찾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경치가 좋으면서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을 찾기가 힘들 듯이 그런 여성을 만나기는 어렵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말을 음식 바구니에 담아 두었던 것이다.
부인의 마음을 깨달은 송준길은 그날 이후로 부인을 깊이 사랑하고 존경하며 살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2남 4녀의 자식이 있었고 그중의 둘째 딸은 숙종 임금의 왕비인 인현왕후를 낳았다.
사람들은 인현왕후를 보면서 외할머니를 빼닮아 현숙하고 인자한 품성을 지녔다는 말을 종종 하였다고 한다.
인현왕후는 숙종과 장희빈 사이에서 많은 고난을 겪은 인물이다.
후대의 사람들은 인현왕후가 숙종의 변덕으로 폐비가 되고 다시 왕비로 복권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많은 인생의 교훈을 얻는다.
그녀에게 그 모진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이 있다면 그건 아마 외할머니의 영향력이 아니었나 싶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누구나 다 부족함이 있으니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아니 더 나아가서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 가장 좋은 환경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하라는 가르침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