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서 눈물이 나는가, 눈물이 나서 슬픈가?

by 박은석


내가 좀 독특한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나 혼자만 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세상 80억 명 중에는 별의별 사람이 있어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갈릴레오 갈릴레이만이 아니었다.

코페르니쿠스도 그런 생각을 했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 지구 저편에 나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는 쌍둥이보다 더 닮은 사람도 있다.

데칼코마니라고 하는데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신의 데칼코마니를 찾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마치 보물을 찾은 것처럼 기뻐한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갖는 사람을 만나면 오랜 동지를 만난 것 같다.

공자가 꿈꿨던 먼 곳에서 온 친구 같을 것이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발한 연구작업을 펼쳤던 학자들 중에 미국의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와 덴마크의 생리학자인 칼 랑게라는 인물이 있었다.

연구 분야는 비슷한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흥미로운 주장을 펼쳤다.

그들의 주장은 이런 것이었다.

‘사람이 슬퍼서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 눈물이 나기 때문에 슬픈 것이다.’

이 말을 처음 듣는 순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슬퍼서 눈물이 났던 것일까 아니면 눈물이 났기 때문에 슬펐던 것일까?

얼마 전에 길바닥에 드러누워서 떼를 쓰는 아이를 봤다.

엄마아빠는 애를 달래다가 지쳤는지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아이는 떼를 쓰다가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그 순간 아이는 더 큰 소리로 울었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처음에는 그냥 떼를 쓰느라고 우는 척했을 뿐이었는데 그러다가 진짜로 눈물이 나오니까 엄청 슬퍼하는 것 같았다.




제임스는 이런 현상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고 한 가지 가설을 주장했다.

대서양 건너편의 랑게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들의 주장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서로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학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굉장한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그 두 사람이 서로 만났는지 서신 교환이라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후대의 사람들은 그 두 사람의 주장을 제임스-랑게 이론이라고 부르고 있다.

심장박동에 이상이 생겨서 가슴이 두근거리다 보니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피가 머리로 쏠려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다 보니까 분노라는 감정이 나온다는 것이다.

감정은 신체의 변화에 따라 나오는 결과라는 주장이다.

그러니까 감정은 자신의 신체적 변화를 감지하는 어떤 감각이라는 것이다.

‘그런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 헷갈린다.




제임스-랑게 이론에 따른다면 내가 스스로 감정 조절을 할 수 있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얻을 수 있다.

내가 몸 관리만 잘한다면 된다는 것이다.

열받아서 분노가 치솟을 때는 어디 시원한 데 가서 열을 식히고 오면 되는 것이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두려운 마음이 들면 깊게 심호흡을 하면서 심장박동 간격을 줄이면 될 것이다.

슬픈 감정이 들면 애써 눈물을 감추면 된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한 슬픈 감정은 잠시 왔다가 사라질 것이다.

반면에 기쁜 감정을 얻으려면 억지로라도 큰소리로 웃어대면 된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도 제임스-랑게 이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이처럼 내 감정을 내가 조절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제임스-랑게 이론은 굉장히 긍정적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건강해서 내 몸을 조절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할 때는 어떻게 될까? 아휴! 복잡하다.

어쨌든 몸도 마음도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