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타고 단 10분 만이라도 도시를 돌아보면 집들이 정말 많다는 걸 보게 된다.
그렇게 많은 집이 있는데 집이 없다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을까?
내 눈에는 분명히 집이 많이 보이는데 아직도 집이 부족하다며 더 많은 집을 지어야 한다고 한다.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에 더 많은 집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럴싸한 말이다.
사람이 많아지면 집도 많아져야 한다.
서울 강동구에 천호동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조선시대의 어느 시점에 그 동네에 집이 1천 채 정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그만큼 그 동네에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것은 분명하다.
지금도 강동구의 중심 동네가 천호동이다.
지금 천호동에 있는 집을 다 세어보면 천 단위가 아니라 수만 채가 될 것이다.
동네 이름을 만호동이나 십만호동으로 바꿔야 할 판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까 땅이 비좁을 수밖에 없다.
가난해서이기도 했겠지만 우리의 옛 선조들은 집을 많이 짓지 않고 한 집에 모여 살았다.
식구들이 늘면 기존의 집 옆으로 방을 한 칸 더 만들어서 연결시켰다.
그런 식으로 방을 늘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 모양이 ‘ㄱ’자처럼 만들어지기도 하고 ‘ㄷ’자처럼 만들어지기도 했다.
아예 건물을 따로 만들어서 안채와 바깥채로 구분짓기도 했다.
그래도 같은 대문을 쓰고 있으면 같은 집이라고 했다.
그 집에 할아버지 할머니 밑의 모든 자손들이 모여 살기도 했다.
큰집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삼촌집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방만 몇 개 건너면 되었다.
심지어는 오촌, 육촌까지도 함께 어울려 살았다.
오촌 당숙(堂叔)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집안 식구이기도 하지만 같은 집에 사는 식구이기도 했다.
그때도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사람이 많다고 해서 무한정 집을 짓지는 않았다.
적당히 짓고 적당히 어울려 살았다.
우리는 흔히 옛날 사람들은 가난하고 무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옛날 사람들도 그 시대에서는 괜찮은 삶을 살았다.
민속촌 같은 데 가서 보면 옛날 집은 규모가 작다.
이 작은 집에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을까 의아해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 집이 크고 넓게 보였을 것이다.
문을 열면 하늘이 지붕이고 땅이 바닥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공간이 바로 우리 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머리 위의 하늘을 누군가의 집이 가로막고 있다.
내 발바닥 밑의 땅을 누군가의 집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 집은 하늘과 땅의 어느 위치쯤 오는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만 우리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번지수를 대면 그곳이 자기 집이라고 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번지수에 딸린 호수를 대야 한다.
번지수만 보고서 현관문을 열었다가는 도둑이 되기도 하고 강도가 되기도 한다.
분명히 개발되고 발전해서 살기 좋아졌다고 하는데 꼭 그런 것 같지가 않다.
넓은 내 집을 가질 수 있다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어렸을 적 내 고향의 집보다 훨씬 좁아 보인다.
마당도 없고 텃밭도 없고, 하늘도 없고 땅도 없다.
이런 나의 마음을 이미 간파하였는지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양떼를 지키는 사람>이란 시에서 노래하였다.
“내 마을에서는 우주에서 볼 수 있는 만큼의 땅이 보인다.
그래서 내 마을은 다른 어떤 땅보다 그렇게 크다.
왜냐하면 나의 크기는 내 키가 아니라 내가 보는 만큼의 크기니까.
도시에서는 삶이 더 작다.
여기 이 언덕 꼭대기에 있는 내 집보다.
도시에서는 커다란 집들이 열쇠로 전망을 잠가 버린다.
지평선을 가리고 우리 시선을 전부 하늘 멀리 밀어 버린다.
우리가 볼 수 있는 크기를 앗아가기에 우리는 작아진다.
우리의 유일한 부는 보는 것이기에 우리는 가난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