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양수리 카페에 들렀다.
창밖으로 유유히 흐르는 북한강을 볼 수 있는 배경 좋은 카페였다.
요즘 분위기 좋은 곳에 위치한 카페들이 다 그렇듯이 자리를 잡기가 수월하지 않다.
다행히 사람들이 덜 붐비는 늦은 오후 시간이어서 어렵지 않게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었다.
아내가 주문을 하러 간 사이에 조용한 고독을 느껴보려고 했는데 옆 테이블의 손님들이 나에게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언뜻 보아도 60대 중반으로 보였다.
처음에는 가족 모임이려니 생각했는데 그분들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가족이 아니라 국민학교 동창들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남자 둘에 여자 셋, 딱 좋은 멤버처럼 보였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친구 한 명이 더 있는데 곧 올 거니까 기다리자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국민학교 동창생이라는 공통의 분모가 있으니까 당연히 그분들의 이야기는 옛날 옛적 어렸을 때의 이야기였다.
친족들이 한 동네에 모여 살았던 것 같다.
영자, 순자, 영숙이, 정은이 등 귀에 익숙한 이름들이 나열되었다.
누구네가 큰집이었고 그다음 큰집이 누구네였다고도 했다.
집안일이었는지 동네일이었는지 모르지만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누구네 집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는 말도 늘어놓았다.
그게 정말이냐며 이제껏 몰랐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하는 친구분도 있었다.
옆에서는 그것도 몰랐냐며 그 동네에서 자란 것 맞냐며 약을 올리는 친구분도 있었다.
누구는 어느 집에 시집가고 누구는 남편이 벌써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할 때, “그때 정말 난리도 아니었지.” “그렇게 빨리 갈 줄 몰랐어.” 하면서 추임새도 넣었다.
그분들의 말에 내가 점점 빨려 들어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분들의 말을 들으려고 귀를 기울인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그분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가만히 있는 내 귀에 들려온 것이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그분들의 고향 동네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마 대문을 열고 나가면 이웃집이 있었을 테고 이웃집에는 친구가 있었을 것이다.
방과 후에 옆집에 가서 놀자고 하면 흔쾌히 맞아들였을 것이다.
친구의 오빠가 내 오빠이고 친구의 동생이 내 동생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출타하셔서 저녁 늦게 오실 때면 옆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런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들으면서 나도 정겨웠던 옛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내 누나들과 비슷해 보였고 사촌 형님들과 닮아 보였다.
남의 말을 엿듣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말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연세 많으신 어르신께서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게 무척 재미있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이해가 되었다.
사람 구경이 최고의 구경인 것이다.
포르투갈의 국민 작가인 페르난두 페소아에 대해서 김한민 작가가 쓴 <페소아>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 포르투갈 사람들의 생활 습관 중 독특한 모습을 설명한 부분이 있다.
포르투갈 에는 창문턱에 몸을 걸치고서 물끄러미 바깥 거리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그런 행동을 가리켜서 포르투갈에서는 ‘창문하다(janelar)’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단어는 일상적인 언어라기보다는 문학적인 표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동사를 만들어낸 것 자체가 나에게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심심할 때는 사람 구경을 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창문을 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인생의 즐거움과 괴로움은 물론이거니와 생로병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뭐니 뭐니 해도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은 사람 구경이요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말은 사람들의 말이다.
그래 맞다.
사람이 제일이다.
사람이 제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