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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18. 2023

손흥민의 아버지에게서 배우는 아버지 상(像)

몇 년 전에 손흥민 선수의 에세이가 나왔는데 최근에는 그의 아버지인 손웅정 씨의 에세이가 나왔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라는 책이다. 세계적인 축구선수인 손흥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반드시 그의 아버지인 손웅정 씨의 이름이 거론된다. 그만큼 손흥민의 축구 인생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친 아버지이다. 손웅정 씨도 축구선수였다. 실력을 인정받는 좋은 선수였다. 하지만 스물여덟 살에 은퇴를 했다. 운동선수로서 한창때였는데 더 이상 운동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아킬레스건을 다쳤기 때문이다. 운동선수가 운동을 그만두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손웅정 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한 가정을 이끌어가야 할 가장이었다. 그러니 그가 축구를 그만둔다는 것은 온 가족의 생계에 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벼랑 끝에 선 듯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1990년에 은퇴했다. 그 당시 프로 선수의 연봉은 요즘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다친 몸도 돌봐야 했지만 당장 가족을 돌보는 게 더 큰 문제였다. 모아 둔 돈은 손에 쥔 물처럼 금방 빠져나갔다.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운동을 했으니까 생활체육시설에서 헬스 트레이너로 일을 했다. 일이 있는 날만 출근하는 일용직이었다. 한 달 월급으로 27만 원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벌어서는 가족을 건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이 없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공사판에 나가서 일을 했다. 프로선수였던 손웅정이 막노동판에서 일한다고 수군대는 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프로선수였던 사람은 없다는 마음으로 일했다. 일이 창피한 게 아니라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고 자신을 창피하게 여겼다는 것이 창피했다. 자신이 교만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부끄러워졌다. 이제부터는 낮은 자세로 삶을 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왕년에 뭘 했든 처자식의 입을거리, 먹을거리는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개똥밭에서 구를 수도 있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남편이고 아버지고 가장이라고 믿었다.

“나는 내 삶을 살아야 해. 당신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뭐라고 떠들든 난 상관없어. 나에게는 아이들이 있어. 프로선수? 그건 다 옛날얘기야. 지금 내 상황은 이거고, 막노동판에서라도 벌어서 살아야 하는 게 지금의 나야. 가장이라면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첫째 의무다. 비록 내 뼈가 부스러지더라도, 당장의 내 삶과 내 생활은 없더라도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을 먼저 돌봐야 한다.”

이렇게 가족을 살려야 한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게 되자 다른 것들은 저절로 낮아졌다. 마음도 누그러졌다. 공사판 막노동은 그에게 있어서 삶을 성찰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너무나 좋은 기회를 주었다.  


손웅정 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를 견디게 한 힘은 곧 가족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인생을 송두리째 도둑맞은 것 같았던 스물여덜 살 때, 단 한 가지 도둑맞지 않은 게 있었다. 가족이었다. 건강을 잃고 돈을 잃고 명예를 잃었을 때도 잃지 않은 게 한 가지 있었다. 가족이었다. 일용직으로 허드렛일을 하고 등짐을 지고 공사판 비계를 오르내릴 때, 온 몸이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망가지지 않은 것 하나가 있었다. 바로 가족이었다. 손웅정 씨의 이야기는 가족을 빼면 할 이야기가 없는 것 같다. 그는 축구 이야기를 하면서 시종일관 가족 이야기를 한다. 결국 손웅정 씨를 오늘까지 있게 만든 힘은 가족이다. 손흥민을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만든 것도 가족의 힘이다. 가족을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니 오늘까지 왔다는 게 그의 이야기의 핵심인 것 같다. 그러면서 외친다. 세상 모든 아버지들아! 가족을 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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