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생선회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엄밀히 말해 생선회는 ‘요리’라기 보다는 ‘재료’를 날 것 그대로 먹는 음식입니다. 그래서 고기를 불에 구워 바로 먹는 ‘직화구이’처럼 생선회도 ‘요리’라고 볼 수 없다고 폄하(?)하는 책도 봤는데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싶기도 합니다.
생선회의 ‘맛’은 절반 이상이 ‘식감’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펄펄 뛰는 생선을 바로 썰어 낸 활어회를 좋아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쫀득쫀득한 그 식감 때문입니다. 반대로 숙성과정을 거친 선어회를 먹어보면 특유의 감칠맛은 좋지만 아무래도 식감은 좀 떨어집니다. 썰어내는 방법에 따라서도 식감이 다른데 예를 들어 같은 전어나 도다리라고 해도 뼈채 썰어내는 세꼬시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포를 뜬 회와는 식감이 많이 다릅니다.
식감을 빼면 사실 생선회는 ‘맛이 강한’ 음식은 아닙니다. 생선회를 별로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대개 ‘밍밍하다’는 표현을 많이 쓰더군요. 그래서 이시가리 같은 귀하고 비싼 횟감들은 대개 지방이 많아 고소한 맛을 내는 것들이 많습니다. ‘가을 전어’도 마찬가지고 ‘겨울 밀치’도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횟감들이 추운 겨울에 맛이 좋은 이유도 상대적으로 기름이 올라 그렇다고들 하지요.
또 생선회는 의외로 느끼한 음식이라 쉽게 물립니다. 제가 태어나서 자란 동네는 아나고(붕장어) 회를 대접에 담아 초고추장하고 섞어 밥 대신 퍼먹던 곳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를 그렇게 많이 먹지 않습니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바닷가 횟집들을 보면 생선회만 파는 것이 아니라 ‘셋트 메뉴’식으로 찜, 튀김, 구이 등등 여러 가지 음식을 같이 파는 곳이 많더군요. 생선회를 먹을 때 초고추장, 와사비, 마늘, 고추, 미나리, 묵은지 등등을 곁들이는데 대부분 향이 강한 양념이나 채소입니다.
이제 생선회에 어울리는 술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대중적으로는 소주(희석식 소주)를 가장 많이 마실 겁니다. 저도 소주 자주 마시지만 사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희석식 소주는 아시다시피 거의 순수한 알코올(주정)에다가 물을 섞어 도수를 낮춘 술이기에 근본적으로 ‘맛’과 ‘향’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소주를 마실 때 뭔가 맛이나 향을 느낀다면 그것은 거기에 첨가한 약간의 첨가물 때문입니다. 그래서 A브랜드와 B브랜드 소주의 맛을 구분하는 일은 거의 무의미합니다.
역으로 생선회에 소주를 많이 곁들이는 이유는 이처럼 특별한 맛이나 향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생선회 자체가 맛이 강하지 않다보니 향과 맛이 너무 강한 술은 대부분 어울리지 않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안동소주’, ‘화요’ 같은 증류식 소주는 의외로 느낌이 강한 편이어서 별로 선호하지 않고 한국식 사케라고 할 만한 ‘화랑’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사케는 잘 알지 못하는데 역시 향이 화려한 쪽 보다는 담백한 쪽이 잘 어울릴 듯 합니다. 사케 중에 향이 적고 깔끔하며 마실 때 차갑게 마시는 종류가 좋습니다.
의외로 생선회에는 위스키가 별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물론 석화에다가 싱글 몰트(피트향 강한 종류 추천!)를 몇 방울 떨어뜨려 그 향을 함께 즐기는 사치스러운 방법도 있겠으나 그것은 생굴의 향이 상당히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워낙 적은 양의 위스키를 곁들이기 때문 아닐까 합니다. 생선회에 꼭 위스키를 곁들인다면 차라리 물이나 얼음을 많이 넣어 일본 스타일의 ‘미즈와리’나 ‘하이볼’식으로 마시는 것이 어떨까 하는데 사실 이런 방법은 위스키의 향을 많이 죽이기 때문에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저라면 생선회에는 다른 술을 곁들이고 위스키는 식사 후에 한 잔 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와인의 경우라면 대개 레드와인 보다는 화이트와인을 선호합니다. 물론 생선회 중에서도 아주 기름지거나 상대적으로 비린 맛이 강한 것들-참치회라던가, 연어회, 겨울 방어회 같은-에는 담백한 피노누아도 의외로 제법 잘 어울리고 드라이한 메를로도 좋습니다만 역시 화이트와인 쪽을 더 선호합니다.
화이트 와인 중에서는 샤도네이 보다는 시큼한 쇼비뇽블랑을 더 좋아합니다. 샤도네이는 대개 오크통 숙성을 거치는데 그 과정을 통해서 부드럽고 풍부한 향을 내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느끼해지는 감이 있습니다. 샤도네이 중에 오크통 숙성을 거치지 않는 와인(Unoaked Chardonnay)도 있는데 쇼비뇽블랑이 너무 튄다는 느낌이 있다면 추천할만한 합니다.
어느 쪽이든 생선회에 곁들이는 와인은 당연히 단맛이 거의 없는 드라이한 것이어야 합니다. 드라이한 스파클링 와인도 좋은 선택지입니다(라벨에 Brut라고 쓰여 있는 것을 고르세요). 상대적으로 도수가 낮고 탄산이 주는 짜릿함도 있어서 술을 잘 못하는 분들도 쉽게 마실 수 있을 뿐 아니라 적당한 신맛으로 비린 맛도 어느 정도 잡아주는 괜찮은 반주입니다. 생선회를 먹을 때는 향이 강한 야채나 마늘, 고추 같은 것을 곁들이는 경우가 많으므로 너무 섬세한 고급 샴페인보다는 대중적인 스페인 까바, 미국 스파클링 와인이 부담 없고 좋더군요.
맥주는 성질이 차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생선회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일반적으로 많이 마시는 라거 맥주들은 더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고 그래서 소폭도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개인적인 선호이겠지만 다른 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밋밋한 맥주의 맛과 향이 생선회의 느끼함이나 비릿함을 씻어내기는 좀 부족한 것 같기도 하네요. 하지만 기네스를 비롯한 쌉쌀한 흑맥주들은 의외로 나쁘지 않고 듀벨이나 올드 라스푸틴과 같이 진하고 도수 높은 종류들도 나름 권할 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