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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늑한 서재 Nov 22. 2021

제가 필사를 하는 이유는요.

읽으며 베껴 쓰는 문장들 -

안녕하세요. 세 번째 글은 '음악'이야기를 한다고 했다가 '필사'로 주제를 바꾼 변덕쟁이 '아늑한 서재'입니다.


여러분은 필사, 하시나요?

저는 필사를 참 좋아합니다. 필사의 사전적 의미는 간단하죠. "필사3 (筆寫)   [명사] 베끼어 씀."


제가 필사를 하는 이유는요. 편식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맨날 먹는 것만 먹으면 영양부족에 시달리겠죠. 콩나물 시금치만 먹는 파초의 글은 허약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좋은 글, 문장, 단어들을 베껴 씁니다.


밑반찬뿐인 밥상 위에 랍스터, 연어, 구절판, 마라샹궈(?) 등 평소 잘 먹지 않는 것들을 올리는 거죠. 글을 쓰다 보면 어떤 버릇, 편중된 습관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생각의 흐름,, 패턴도 지겹게 느껴지고요.


그런 제게 필사는 큰 도움이 됩니다. 글 쓰기 전에 미리 장을 잔뜩 봐 두는 것과 비슷해요. 끼니를 차리기 전, 부엌을 둘러보는데 이것저것 재료가 풍성하면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겠죠. 미리미리 저의 마음과 뇌에 많은 것들을 채워놓는 작업입니다.


새로운 재료(필사로 체화된 문장, 어휘)들로 요리(글쓰기)를 하전에 없던 요리가 탄생합니다. 성장한 나를 발견할 수 있고 성취감도 느껴집니다. 같은 재료도 전과는 좀 달라 보이고요.. 늘 보던 '하늘'을 나와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작가들의 글을 손으로 쓰다보면 저절로 공부가 됩니다.

                                    

 지난주 토요일, 마지막 수업이 있었던 <일상에서 에세이 쓰기> 수업에서도 이남희 작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필사를 통해 좋은 문장, 어휘를 내 것으로 만들라고요. 고개를 끄덕끄덕, 마음속에 또 한 번 새겨 넣었습니다.



저는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타입이에요. 자연스레 필사도 여러 권 돌려가며 하게 됩니다. 할 때마다 재미있고 작가님들의 탁월한 글솜씨에 감탄하게 됩니다.


읽으며 필사하고 있는 책을 소개할게요.


김초엽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 허은실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공간의 시학> 가스통 바슐라르 ,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에쿠니 가오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사후생>입니다.

저는 내용이 좋으면 번역 문장도 필사를 하고 있어요.


 

줄 긋고 낙서하며 읽기 위해 내돈내산 ^^ 세 번째 책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입니다. :0


몇 문장 소개하지 않을 수 없네요.


먼저 허은실 작가의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입니다. (이동진의 빨간책방 오프닝 에세이)


207p <필사, 몸으로 읽는 일>

… 몸으로 익힌 건 쉽게 지워지지가 않죠.

필사는 손으로 글자를 만져보는 일입니다.

몸으로 책을 읽는 일입니다.

내 손을 거쳐 내 속으로 들어와서

글자들은 내 피 속을 떠다니다

나를 이루는 성분이 됩니다.


고요한 한밤중에 깨끗한 노트를 펴고

좋아하는 문장을 베껴 써보고 싶은, 그런 계절입니다.

  




허은실 작가님은 제가 방송일 할 때 처음 만난 선배님, 사수였어요. 늘 옆자리에 앉아 선배가 문장 다듬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습니다. 깜박이는 커서 앞을 비워둔 채 고민하는 선배를 보며 배운 게 많아요.  저는 진짜 햇병아리였거든요. 종종 책 속 문장들을 손으로 베껴 쓰며 그 시절을 떠올립니다. 선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여전히 전 배울 게 많고 한참 멀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공들인 좋은 문장들이 정말 많아요. 필사 책으로 강추입니다.


다음으로 요새 제가 꽂혀있는 김초엽 작가의 <방금 떠나온 세계>입니다.


126-127p [로라]


  그 팔은 여전히 차갑고 단단했으며 지독한 기름 냄새가 났습니다. 힘 조절을 못 해 부품들이 제 어깨를 찔러댔고, 공기 중으로 노출된 인공 근육이 제 뺨을 건드렸습니다.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감촉이었어요. 로라는 제가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세 번째 팔을 늘 포옹에 동참시켰고요, 이번에도 그랬죠.

  눈이 마주쳤을 때, 로라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씩 웃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여전히 로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동시에 제가 앞으로도, 어쩌면 영원히 로라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도요.



김초엽 작가의 책은 사둔 것이 많네요. 왕성한 활동을 하는 작가입니다. 부럽고 참 질투 나요.  위의 '로라' 도 좋았고요. '숨그림자'와 '오래된 협약' 도 빠져서 읽었습니다. 특히 '오래된 협약'을 읽을 때는 영화 듄이 떠올랐어요. 사막의 스파이스와 벨라타의 오브가 오버랩되었습니다. 매력적인 이야기였어요.  


마지막으로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입니다.

오늘 빠져서 읽었던 구절을 소개해 볼게요. 필사 노트에도 정성껏 옮겨 썼습니다. 며칠 째 미세먼지로 답답했는데 책 속의 월든 호수를 떠올리니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p283 / 9.호수

  9월이나 10월의 이런 날 월든 호수는 완벽한 숲의 거울이 된다. 그 거울의 가장자리를 장식한 돌들은 내 눈에는 보석 이상으로 귀하게 보인다. 지구의 표면에서 호수처럼 아름답고 순수하면서 커다란 것은 없으리라. 하늘의 물, 그것은 울타리가 필요 없다. 수많은 민족들이 오고 갔지만 그것을 더럽히지는 못했다. 그것은 돌로 깰 수 없는 거울이다. 그 거울의 수은은 영원히 닳아 없어지지 않으며, 그것의 도금을 자연은 늘 손질해준다. … 이 호수의 거울에는 입김 자국이 남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입김을 구름으로 만들어 하늘로 띄워 올리는데, 그 구름은 호수의 가슴에 다시 그 모습이 비친다.



<월든>을 읽다 보면 소로의 호수에 초대받은 느낌이 들어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뚫리고 시야가 환해집니다. 그가 잔잔한 호숫가에서 느꼈을 고즈넉한 감정, 평화로움이 전해져서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져요. '읽기 명상'에 <월든>만 한 책은 없는 것 같아요.

소로가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앞부분은 재치 있는 입담에 감탄하며 읽었는데 중반에는 또 이런 매력이 있네요. 뒷부분에는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기대가 됩니다. (저, 월든 처음 읽어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필사를 참 열심히 하는 파초입니다...혼자 별 다섯 개 도장 쾅쾅 찍어줍니다... :)


필사를 하면서 생각해요.. '아, 나도 좋은 문장 쓰고 싶다.'라고요.

답 없죠... 제 페이스대로 부지런히 갈고닦아야겠죠. ^^


며칠 내내 먼지가 지독하더니 비바람이 거세게 부네요.. 묵은 먼지 싹 씻겨 내려가고 내일 아침에는 화창하고 밝은 날씨 마주했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즐겨 읽는 책의 좋은 문장들, 지나치지 마시고 필사 꼭 해보시기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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