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늑한 서재 Nov 23. 2021

창문 없는 작업실은 고시원과 닮았다

- 한 시절의 매듭

작업실에는 창문이 없습니다. 없어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생각해봅니다.


없어서 좋은 점은 시간의 흐름이나 환경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몰입하기 좋다는 것. 이 두 가지를 들 수 있겠네요. 끝내주게 화창한 가을 하늘, 갑자기 쏟아지는 비, 도심을 꽉 채운 미세먼지...  이런 것들은 저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줍니다.


아이들이 우산을 챙겼는지, 베란다 창문은 닫고 왔는지 생각이 갈라집니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친구들의 만나자는 연락이 올 수도 있고요. 변수가 많아집니다. 그러나 창이 없는 작업실에서는 제 의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몰입하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핸드폰도 엎어놓고 어지간하면 확인하지 않아요.. 작업의 능률이 올라갑니다.


고시원에 틀어박혀 글을 썼다는 작가님들이 많이 있죠. 저도 20대 중반에 아주 잠깐 고시원에서 지낸 적이 있었는데요. 고시원은 생활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지금 작업실 환경과는 차이가 좀 있습니다.. 당시 지내던 홍대 앞 고시원은 보증금 없이 월세가 저렴한 곳이었어요. 3층은 여성, 4층은 남성, 5층에는 공용 부엌과 테라스가 있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고시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김치통입니다. 방문 앞에 김치통을 두고 사는 이가 있었어요. 본가에서 익지 않은 김치를 가져왔던 거겠죠. 5층 공영 부엌의 냉장고는 미어터질 지경이라 할 수 없이 거기 둔 것일 수도 있고요. 통은 투명해서 안에 몇 포기가 들었는지 셀 수 있을 정도였어요.


그런 식으로 방문 앞에는 좁은 방 안에 들여놓지 못한 박스나 살림살이가 놓여 있었습니다. 제 방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제 짐은 커다란 백팩과 다 망가진 캐리어 하나가 전부였으니까요. 여행의 연장이다 생각하고 고시원에 들어갔기 때문에 살림을 더 장만하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근처 마트에서 비누나 샀을까요. 방 안을 둘러보면 여행을 온 것처럼 휑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밤 10시가 되면 누군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어요. 신기한 건, 그 라디오 소리에 아무도 컴플레인을 걸지 않았다는 거예요. 시끄럽다고 벽 치는 소리 한 번 들을 수 없었습니다. 시간을 알려주는 알람 같기도 했어요. 일찍 귀가한 날, 10시가 되면 어김없이 DJ 이소라의 오프닝 멘트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방에도 창문이 없었어요. 방문을 닫고 불을 켜면 형광등에서 미세한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창백한 불빛 아래 칸막이 너머의 음악소리를 들으며 저는 책상에 앉아 뭔가를 쓰려고 했을 거예요. 자신 있게 말하는데 그때 쓴 건 그냥 쓰레기였습니다. 아무 가치도 없는 그냥 내뱉는 말들 뿐이었어요. 뭔가 대단한 걸 쓸 의지도 없었습니다. 그저 저는 살기 위해 마음을 정돈하려는 노력을 했을 뿐입니다.





20대의 중반이었던 저는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규정하고 싶었어요. 간절했지만 방법을 알지 못했고, 매번 한계에 부딪쳤습니다. 늘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도 어떤 패턴이 느껴졌어요. 때와 상황에 따라 배역을 맡은 것처럼 모습을 바꾸고 있었죠. 그중 무엇이 진짜 나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었어요. 혼자 긴 여행을 떠나고, 집에 돌아가지 않고 고시원에 틀어박히고, 홍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생각을 거듭했어요.


어린 시절의 아픔은 너무 가깝게 닿아있었고 객관적인 시선을 확보할 거리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혈연,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자신을 외면한 시간이 너무 길었던 거예요. 그래서 박차고 나온 것이기도 했고요.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더 이상의 나아감은 어렵다는 결론에 저는 그렇게 밖으로 돌며 방황을 이어갔습니다. 미워하는데 사랑하는 감정은 정말 끈질기죠. 미움도 사랑도 쉽게 끊어낼 수 없습니다. '거리두기'만이 유일한 방법이었어요. 여기에는 나 자신과의 거리두기도 포함됩니다.  


지금 창문도 없는 작업실을 구하고, 틀어박혀 뭘 쓰겠다고 하는 건 그때의 방황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인 듯합니다. 한 번 매듭짓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는 때가 있어요. 지금을 그 때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저는 굉장한 모범생이었던 것 같아요. 방황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예문에 '젊은 시절의 방황'이라고 나와있습니다. 사춘기를 지나 한 번의 방황의 시기는 찾아오기 마련이죠. 그 방황을 20대 설익었을 때 했다는 게 지금은 또 위안이 되네요.


얼마 뒤, 고시원에서 나온 저는 집에 들어갔고 방송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요. 전보다 훨씬 안정적인 마음으로 새로운 것들을 시도했고 이어가다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코너를 돌아 다른 장면을 마주한 거죠.  당시에는 뜻밖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네요. 매듭짓고 한 단계 올라선 제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문 없는 작업실에서 저는 지나온 시간의 문을 활짝 열어젖힙니다. 격자무늬로 이어진 시간의 방 여기저기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지어갑니다. 필요에 따라 어떤 문은 열고 어떤 문은 닫습니다. 그럴 수 있어 행복합니다. 감사하고요.


덧, 창문 없는 작업실의 나쁜 점은 광합성이 어렵다는 점이죠. 때때로 가라앉은 기분을 빨래 널듯 햇빛 아래 펼쳐놓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긴 산책을 나섭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황홀하게 물들었다 떨어지는 낙엽을 밟아야죠.. 그러면 한결 나아집니다.


상황이 나아지면 저는 창문 없는 작업실로 옮겨가게 될까요? 소호사무실의 창 있는 방에는 언제나 바쁜 쇼핑몰 업체 대표님들이 계십니다. 제가 원한다고 해도 쉽게 자리가 날 것 같지는 않은데요. 창문 없는 작업실에서 지내는 일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습니다. 1월에 저는 또 어떤 글을 쓰게 될까요. 이 방의 계약이 끝나는 날은 1월 8일입니다.


@

이전 03화 제가 필사를 하는 이유는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