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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늑한 서재 Nov 30. 2021

내 방이 있었으면 했다.

- 작업실을 떠올리면 웃게 된다..

내 방 하나 있었으면 했다.


엄마는 나를 낳고 생애 첫 집을 샀다고 했다. 면목동 그 집은 단층에 문들은 다 미닫이였다. 시멘트를 바른 작지 않은 마당에는 수돗가도 있었고 작은 화단도 있었다. 다섯 살 무렵 나는 가족 중 제일 먼저 일어나 드르륵 소리가 나는 미닫이문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갔다.      


화단 끝에 작은 몸을 둥글게 말고 앉아 후두둑 내리기 시작하는 비를 바라보았다. 공기 중에 맵싸한 흙냄새가 풍겼다. 낮게 가라앉았던 공기가 풍선처럼 탁 터지기 시작했다. 막 비가 오기 시작할 무렵의 날씨는 수수께끼처럼 여겨졌다. 세상에는 분명한 것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는 것. 흐릿한 그것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하는 게 좋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하던 때였다. 다섯 살의 어린 나는 그 때부터 혼자인 게 좋았다.

    

남현동으로 이사를 간 것은 그보다 더 컸을 때이다. 유년시절의 집을 생각하면 늘 ‘한지붕 세가족’이라는 드라마 제목이 떠오른다. 부모님은 알뜰한 분이셨다. 아파트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엄마는 단독주택을 사서 세를 들였다. 남현동 시절, 아버지가 지방에 1~2년간 일을 가시게 되었다. 그 때, 엄마는 방 세 개 중에 한 개를 미혼 언니들에게 내주었다. 이미 집 오른편으로 살림집이 하나 더 있어 ‘한지붕 두가족’으로 살고 있었는데 아예 집의 일부를 같이 쓰는 식구가 늘어난 것이다.      


아침에 욕실 문을 두드리면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긴 머리를 감거나 세수를 하던 언니들이 문을 열어주었다. 세면대에서 씻으라고 자리를 내주면 나는 조심스럽게 들어가 양치도 하고 얼굴에 물도 묻혔다. 우리 식구가 쓰는 샴푸와 언니들이 쓰는 샴푸는 향이 달라 낯설었다.


언니들은 엄마와 이야기도 나누고 식구처럼 잘 지냈다. 어느 날 늦은 오후, 우리 식구가 쓰는 작은방에 엄마와 동생, 나와 언니들이 모였을 때였다. 나는 세계명작동화를 읽고 있었는데 (안데르센의 동화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언니들과 엄마의 대화 소리가 뚝 끊겼다. 아마 주인공이 위기 상황에 처했던 듯 싶다. 한참을 읽다 빠져나왔는데 방 안 풍경이 낯설었다.      


일곱 살의 나는 고개를 들어 언니들과 엄마를 바라보았다. 무슨 얘기 했냐고 물었더니 못 들었냐며 웃는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하나도 안 들렸다고 대답했다. 기분이 묘했다. 한편 시원하고 개운하다는 느낌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궁금하다. 그 때 엄마와 언니들이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했는지.      




거기서 5~6년을 살고 부모님은 방배동에 집을 사셨다. 그 해 열 살이던 나는 가슴이 뛰었다. 새 집이 2층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남현동에서 버스를 타고 이수역에 도착하기 전에 내렸다. 오르막길을 좀 걸었더니 주택가가 나왔고 큰 길가의 코너를 지나 두 번째 집에 도착했다. 이삿짐을 들이느라 활짝 열린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키 큰 나무들과 꽃나무들이 제법 구색을 갖춘 아담한 마당이 나왔다.       


현관 안은 목조로 꾸며져 있었다. 안방과 거실, 부엌은 크고 하나 더 있는 방은 작았다. 1층을 둘러본 나는 곧장 2층으로 향했다. 계단에는 반질반질 윤이 흘렀다. 올라가니 거실을 통해 탁 트인 베란다가 보였다. 처음부터 나는 그 곳이 마음에 들었다. 1층의 작은 방보다 큰 방이 두 개나 있었고 부엌은 작았다. 도배가 새로 되어 있었고, 장판도 새 것이 깔려있었다.


어쩌면 이 방들 중 하나는 내 방이 되지 않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둘러보았다. 노을이 지는 저녁에 베란다에 나가 하늘을 보면 정말 멋질 것 같았다. 거실에서 이런 저런 놀이를 하면 참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2층에는 이삿짐이 올라가지 않았다. 엄마는 이삿짐을 정리하고 우리를 전학시키자마자 2층과 반지하에 세를 놓았다. 2층의 입구에는 문이 아닌 두꺼운 커튼이 달렸다. 계단이 짧지 않고, 한 번 꺾여 올라가는데다 당시에는 층간소음 같은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은 또 ‘한지붕 세가족’이 되었다.     


4학년. 나는 당시로서는 조금 이르게 사춘기에 진입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말 수가 없고, 술이 유일한 낙이며 속에 화와 원망이 많은 분이셨다. 술을 한 번 드시면 어린 나까지 골치가 아팠다. 술을 안 드셔도 늘 찌푸린 얼굴은 아무리 애정을 갖고 보아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왜 그렇게 날 핀잔주고 못마땅해 하셨는지. 얌전한 첫째, 셋째와 달리 둘째는 유별나다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선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분이었지만 남편에 대한 두려움, 불안을 숨기지 못했다. 공기처럼 불안은 아이에게 전해진다. 나는 모든 상황을 눈치 빠르게 파악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이건 내향적이면서도 적극적인 내 천성 때문이기도 했다. 미숙한 나이였다. 엄마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지켜주고 싶었다.


저녁 8시. 아버지가 연락도 없이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그때부터 엄마는 자꾸 시계만 바라보았다. 시선은 TV드라마에 가 닿아 있었지만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 날 밤, 나는 잠들지 못했다. 분명 취해있을 아버지가 대문을 두드리면 방문을 열고 나갔다. 숨어있지 않기로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솔직할 수 없다는 것은 어린 내게 꽤 가혹한 일이었다. 가끔은 다 내려놓고 쉬고 싶었다. 헌데 숨을 곳이 없었다. 집은 늘 북새통이었다. 2층에 사는 동생 또래의 아이도 매일 우리 집에 내려왔다. 열린 창문으로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 마주친 아주머니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마음이 늘 분주하고 소란했다.    


방배동에서의 삶은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게 흘러갔다. 널찍한 안방에서 부모님과 막내가 자고, 언니와 나는 작은 방에서 잠을 잤다. 부모님 생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아주 마땅한 처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점점 불편해졌다. 내 방이 있었으면 했다. 좋아하는 책을 혼자 소유하고 싶었고, 때때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싶었다.


읽을 책은 늘 부족했다. 갈증이 났다. 그래서 끄적끄적 쓰기 시작했다. 일기를 열심히 쓰고 독후감도 쓰고, 칭찬도 받았다. (지금도 아이들의 책이 꽂힌 책장에 나의 초등학교 시절 일기가 꽂혀있다. -나는 ‘국민학교’ 라고 치는데 한글프로그램이 자꾸 ‘초등학교’로 바꾼다.)


읽기와 쓰기는 나의 유일한 돌파구였다.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해나갈 수 있는 유일한 작업,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안전한 도피처였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 나와 언니가 교복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집안에 획기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2층에 고모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 무렵 넓은 주방 한 쪽을 방으로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그 방은 언니를 위한 공간이었다.   

   

막연히 분하고 억울했다. 예나 지금이나 내 방 하나 있었으면 했다. 아버지는 술을 줄일 생각이 없었고, 엄마는 여전히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때로 미칠 것 같다. 무던한 성격이었더라면 덜 불행했을까. 사춘기. 전두엽이 날뛰는 시기에 나는 진짜 되고 싶은 나와 결별했다. 나의 소망, 욕구를 긍정하지 못하게 되었다. 엄마랑 냉전을 벌이다가도 아버지가 술에 취해 들어오시면 전사의 갑옷을 찾아 입었다. 진짜 내 옷은 어디에도 없었다.   삶은 아주 단순한 이유로 꼬인다.


그저, 딱 내 방 하나 있었으면 했다. 마음 놓고 쉴 내 방 하나. 그러나 우리 집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계속 북새통일 예정이었다.


그리고 믿기지 않겠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내 방을 갖고 있지 않다. 부부가 함께 쓰는 방은 엄연히 따지면 내 방이 아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작업실이 유일한 내 방인 셈이다. 어떻게 이 공간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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