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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늑한 서재 Apr 30. 2022

빵은 우주다.

- 지금 이 순간은 겹겹이 쌓인 패스츄리의 한 층일 뿐.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작가 매트 헤이그 / 발췌 


"고양이 실험한 사람 말이에요?"
"맞습니다. 그 사람. 슈뢰딩거는 양자 물리학에서 모든 대체 가능성은 동시에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모두 한꺼번에요. 같은 장소에서. 양자 중첩이죠. 상자에 든 고양이는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있습니다. 상자를 열면 고양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있어요. 원래 그렇죠.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상자를 연 뒤에도 고양이는 여전히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 있습니다. 모든 우주는 다른 모든 우주와 중첩되어 존재합니다.

트레이싱 페이버 위에 그리는 백만 개의 그림처럼 모두 같은 형태 안에서 조금씩 변형되죠. 양자 물리학의 다세계 해석은 갈라진 평행우주가 무한히 존재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당신은 삶의 매 순간 새로운 우주로 들어갑니다. 결정을 내릴 때 마다요. 그리고 그 세계들 간에는 어떤 커뮤니케이션이나 이동이 없다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였습니다. 비록 그 세계들이 같은 공간에서 진행되고, 우리에게서 몇 밀리미터 떨어진 상태에서 진행된다고 해도요."

"그럼 우리는요? 우린 그 세계들 사이를 오가고 있잖아요."
"맞습니다. 난 여기 있지만 동시에 여기 있지 않다는 걸 압니다. 또한 동맥류로 파리의 병원에 누워 있기도 하죠. 애리조나주에서 스카이 다이빙을 즐기기도 하고, 인도 남부를 여행하기도 하고, 리옹에서 와인을 맛보기도 하고, 코트다쥐르에서 요트에 누워 있기도 합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메트 헤이그 211~212P



주인공 '노라'는 과거에 대한 후회로 괴로워하다 자살을 시도한다.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에 머물며 가보지 못한 인생을 살아본다. 


여섯 번째 쯤의 삶은 남극의 빙하연구원으로 사는 것. (노라의 어릴 적 꿈이었다) 그 곳에서 만난 프랑스인 '위고'로부터 뜻밖의 말을 듣게 된다. 자신도 '노라', 당신과 같은 '이동자'라는 이야기를.


우리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단 하나의 지점이죠. 혹은 이것인 동시에 저것이기도 하고요. 살아있으면서 죽었죠. 그리고 그 순간 두 이진법 사이에서 가끔은, 그냥 가끔은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되어서 살아 있거나 죽었을 뿐 아니라 우주 파동 함수를 따라 존재하는 모든 양자 가능성이 되는 겁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메트 헤이그 213P



여기까지 읽고 어제 밤부터 생각이 많아졌다. 올 초부터 양자물리학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야기도 여러 번 접했다. 그런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론을 몇 달만에 완벽히 이해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어렴풋이 고개를 든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과거가 후회되는 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과거에 대한 후회 때문에 현생이 힘들다는 고민글을 온라인 상에서 심심찮게 본다. 무조건 잊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친절한 분들이 달아주는 댓글을 보며 막연한 위로나마 힘이 되었으면 할 때도 많다.  


'과거' '후회'라는 화두 앞에서 나는 양자역학을 떠올린다. 시간과 시간 사이, 에너지가 이동할 수 없다면. 에너지가 고정되어 있고 그때 일어난 일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영화의 한 장면도 떠오른다. '인터스텔라'에서처럼 블랙홀에 뛰어들어가 과거의 나 또는 주변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백 투 더 퓨처'에서 처럼 타임머신이 발명될 때까지 기다린다? 아니면 '매트릭스'처럼 신경회로 안의 다른 세계 속으로 들어가 미지의 적들을 무찌르며 현 세계를 조정한다?  


세상에 나온 각종 SF영화와 소설들을 찬양하고 싶다. 인간의 바람을 과학이라는 소스에 버무려 멋지게 그려낸 이야기들은 현생을 살아가는 데 꽤 큰 위로가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생각을 멈출 수 없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어디엔가 고스란히 존재하고 있다면... 인간의 몸으론 그 사이를 넘나들 수 없고 다만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면...  현실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난 빵 반죽을 떠올린다. 


겹겹이 쌓인 패스츄리, 혹은 크루아상의 얇은 막들. (적절한 사진이 없어 대신 지층을 올려본다.)


Photo by Lubo Minar on Unsplash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 영화 <타짜>의 대사 


아무리 과거가 후회된다고 한들, 인간은 밑장을 뺄 수가 없다. 패스츄리의 단면, 지층의 단면을 보고 있으면 인간이 시간 속에서 감당해야 할 어려움이 느껴진다. 끝모를 사막을 무거운 등짐을 매고 걸어나가는 것처럼 삶이 무겁게 느껴진다. 


그러나 동전을 뒤집는 것처럼 생각을 조금만 틀면 가벼워진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분명한 명제에 도움닫기를 해본다. 


되돌리고 싶은 과거 속으로 인간은 무슨 짓을 해도 걸어 들어갈 수 없다. 카세트에 테이프를 넣어 음악을 듣던 시절,  뒤로 돌린 테이프에선 이상한 소리가 난다는 소문이 돌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반을 뒤로 돌렸을 때, 귀신 소리가 난다며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이건 일종의 경고? 라고 멋대로 해석해본다. )


그때나 지금이나 할 수 있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 


과거를 무거운 납처럼 지니고 갈 순 없다.  경쾌하게 앞으로 나아가려면 발목을 잡은 후회라는 덩어리를 끊어야 한다.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 




시작은 불공평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반죽은 재료가 부족해 턱없이 작을 수 있다. 반대로 어떤 반죽은 지나치게 큰데다 온갖 견과류에 베리에 몸에 좋다는 것들이 가득 들어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만큼은 공평하다. 앞으로 흐르는 시간, 주어진 하루 24시간. 시간의 층은 빈자에게도 부자에게도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도 넘치는 자에게도 겹겹이 동일하게 쌓인다. 


과거가 후회된다고 밑장 빼기를 하면 위의 층들이 뜯겨나가거나 무너져 전체적인 형태가 무너질 수 있다. 


과거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걸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그 때의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인정하고 거기서 얻은 실패를 교훈삼아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래도 지금의 발걸음이 쇠스랑 찬 것처럼 무거울까? 


 과거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지난 날의 나를 애정을 담아 힘껏 껴안는 것. 동시에 현재의 나를 사랑하는 것. 


쌓여있는 시간의 층 위로 지금 내가 호흡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층이 올라가고 있다. 찢어질 것 같은 누더기 같은 시간을 올릴 것이냐, 봐줄 만한 시간을 올릴 것이냐 하는 것은 순전히 내 선택에 달렸다. 


그래서 무겁고 그래서 가볍다. 나는 가볍다에 손을 들고 싶다. 가벼워지고 싶다. 홀가분해지고 싶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뚜벅이처럼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빵은 비로소 완전히 구워진다. 삶을 끝내는 순간, 신은(조물주, 혹은 우주) 그 위에 통깨를 뿌릴 수도 있고 생크림이나 딸기로 장식을 할 수도 있겠다. 다 구워진 빵이 너무 예뻐 고대로 두고 커피를 곁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먹음직스러운 빵은 천국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Photo by Mathias P.R. Reding on Unsplash / Photo by Dave Heere on Unsplash / Photo by Didi Miam





매트 헤이그가 쓴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지금 중반까지 읽었다. 과거에 대한 후회로 자살에 이르렀지만 '회색 지대'에서 여러 삶을 경험하는 노라의 남은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위고를 비롯한 다른 '이동자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 


이 책은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어바웃 타임>을 만든 제작사가 만들 거라고 하는데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작가인 매트 헤이그는 20대 초반, 심각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으며 삶을 놓아버릴 뻔 하지만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서서히 어려움에서 빠져나온다. 독서와 글쓰기는 이제 그의 삶 자체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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