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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Feb 19. 2023

아몬드를 읽고

과연 누가 더 괴물인가?

아몬드라는 책을 총 세 번 읽었다.


2019년도에 한 번 읽고, 금년에 이 책을 두 번 다시 읽었다. 이 책으로 시험 볼 것도 아닌데 마치 시집처럼 계속 다시 읽고 싶어졌다.


아마도  매번 읽을 때마다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단어와 문장과 그 뜻이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나 자신과  두 번, 세 번째  책을 읽는 나 자신은 각기 다른 사람이었다.

'나라는  물성'은 언제나 '나'임에는 변화가 없지만  '나의 속성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이니까. 감정 상태도 변하고 , 관점도 변하고, 생각의 넓이도 변한다. 그래서 같은 책을 읽고 있는 나 자신은 매번 다른 사람이 된다.


책의 구절구절 간결하지만 질감 있는 표현들 선재라는 한 아이를 통해  나는 우리의 삶을 잠시나마 단편 영화 보듯 관객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선재는 뇌의 편도체 이상으로 인한 '감정불능증'을 겪고 있다. 그래서 주변사람들이 선재를 '감정이 없는 괴물'이라고 부른다.


과연 누가 진짜 괴물인가?


선천적으로 감정이 배제된 선재의 눈을 통해 , 우리는 이 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세상을, 소위 '정상인'이라는 범주의 인간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정상인이라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도 쉽게 쓰고 가벼이 여긴다.

아이돌 인기프로그램 시상식에서 으레 읊어대는 "여러분 사랑해요~"라는 말처럼.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뉴스 화면 속 전쟁 폐허 더미 안에서 처절하게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별 감흥 없이 본다. 실제 일어난 비극임에도 오늘의 뉴스 중 이슈 거리로 옆 사람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모든 감정을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 선재는 이런  '정상인의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가지 못한다.

선재의 엄마와 할머니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갑작스러운 칼부림으로 죽임을 당했을 때도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 비극을 목도하기만 했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ㅡ245쪽ㅡ



선재의 대사에서 나는 과연 누가 더 괴물일까를 생각해 본다. 괴물이라 불렸던 선재는 감정불능증이기에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 '정상인인 우리'는 감정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지만 오히려 자신의 이득에 따라 선택적인 '감정불능의 괴물'이 된다.


극한의 의미와 고귀함을 담고 있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쉽게 남발하고 정작 남의 괴로움은 외면한다.


과연 누가 진짜 괴물인 건가?



<아몬드>는 쉽고 간결한 문체로 마치  눈에 각 페이지의 내용이 장면으로 전환되어 보이듯이  표현과 묘사가 탁월하다.

내용은 그리 복잡하지 않지만 만한 심리학 서적보다 나 자신을, 그리고 타인들의 감정을 한 번쯤은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생각하게 만든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이 어느 순간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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