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by 이자까야

학창 시절에 한번쯤 학교에 불이 나서 시험을 못 보게 되길 바래본 적이 있는가?

그런 생각조차 안 한 모범적인 사람들도 많겠지만 시험이 너무도 싫었던 나는 시험기간만 되면 학교에 불이 나길 바랬다.

그런데 그 허황되었던 소원이 내가 교사가 되고 나서야 현실로 이루어졌다.


그날은 내가 야간 자율학습을 감독하는 날이었다. 아침 7시 반에 학교에 도착했으니(고등학교 담임교사들은 보통 아침 8시 전까지 출근해야 한다.) 야자감독이 끝나는 10시까지 학교에 있어야 한다. 학교에 무려 15시간 가까이 있어야 하다니... 출근부터 마음이 무거운 날이었다. 밤늦게까지 야자를 해야 하는 아이들도 슬프고 나도 슬펐다.


저녁 6시쯤 학교에서 석식을 먹고 나니 야자시간까지 40여분이나 남았다. 소화도 시킬 겸 본관 건물에서부터 1학년 교실이 있는 별관까지 층층별로 계단 걷기를 시작했다. 본관에서 별관까지 내부 연결이 되어 있으나 거리가 꽤 된다. 게다가 학교는 계단이 많아 추운 날씨에는 건물에 있는 계단만 모두 걸어 올라가도 꽤 운동이 될 것 같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본관에 있는 식당에서 석식을 먹고 있거나 아니면 운동장에서 족구나 축구를 신나게 하고 있었다. 운동장에서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뿌듯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저 아이들이 야자실에 들어서자마자 책상에 엎어져 곯아떨어지겠구나...하는 찹찹한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운동 직후의 수면은 얼마나 달달할 것인가~.


조만간 야자실에서 '잠을 자려는 자'와 '잠을 깨우려는 자'의 사투가 벌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실내용 슬리퍼에서 워킹용 운동화를 갈아 신고 본격적인 별관 계단 오르기 운동을 시작했다.


별관 건물은 그날따라 유난히 텅 비어있었다. 그래서 더욱 식후 운동하기 딱 좋았다. 얼마 전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계단만 걸어도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계단 오르기를 열심히 시작한 터였다. 팔을 앞뒤로 흔들며 ‘하나 둘, 하나 둘~’ 속으로 가볍게 구령을 붙여가며 씩씩하게 올라갔다. 3층 정도 올라갔을 때 땀이 살짝 나면서 숨이 차기 시작했다. (본관에서 별관까지는 빨리 걸어도 5분 이상 걸린다.) 중간에 포기할까 생각했지만 석식을 너무 많이 먹은 죄책감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는 건물 맨 위층인 5층까지 올라가야 했다.


별관 5층엔 1학년 교실이 3개 반 있다. 그런데 5층에 도착하는 순간 복도 끝에 위치한 교실 창문에서 연기가 세어 나오고 있었다.


“저건 뭐지?”


연기가 세어 나온다기보다는 회색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연기의 진원지로 다가갔다. 교실은 연기로 자욱해 안이 뿌옇게 보였다. 그리고 교실 사물함 끝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타오르는 불길이었다. 마치 액션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교실 끝 쪽은 연기와 불길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 연기는 천장을 꺼멓게 그슬리고 있었다.



“우 직!”


높은 열기에 교실 맨 위 창문 하나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별관 5층은 조금 전까지의 평화로웠던 분위기에서 공포 스릴러물로 돌변해버렸다.

다행히 교실 안은 사람이 없었다. 서둘러 119에 연락을 하고 이 시각에 학교에 남아있을 것 같은 선생님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별관이 본관 건물과 거리가 좀 있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까지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나 혼자 옆 반에 비치되어 있던 소화기를 가져와서 소화기 삔을 뽑았다. 그러나 소화기에선 ‘피~~ 식’ 하고 약간의 분무 액체만 세어 나왔을 뿐이다. 불량품이었다! 당황할 새도 없이 정신없이 그 옆 반으로 뛰어가서 다른 소화기를 또 뽑아 들었다. 역시 마찬가지로 작동되지 않았다. 그때 마침 조금 전 전 내 전화를 받은 한 선생님께서 양 손에 소화기를 들고 슈퍼맨처럼 달려왔다. (그 순간 정말 멋있어 보였다!) 우리는 소화기를 각자 한 대씩 들고 불길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 교실을 향해 소화기 액체를 분사했다.


태어나서 화재 현장을 직접 본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불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번진다는 것도 새삼 실감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건물 맨 위층 복도 끝에 위치한 교실이어서 금방 다른 교실이나 층으로 번지진 않았다.


각 교실 스피커에서는 오늘 야자 하는 학생들은 서둘러 귀가하라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우~~ 와!!!” 하는 즐거운 함성 소리가 들렸다. 불타는 교실과 아이들의 함성 소리라... 참 이질적인 조합이다. 곧이어 새빨간 소방차 2대와 앰뷸런스가 요란한 싸이렌 소리를 내며 학교에 도착했고, 그와 반대로 아이들은 집에 일찍 간다는 들뜬 마음에 소리를 지르며 (역시 남학생들은 학교에 불이 나도 걱정보다는 야간 자율학습을 안 하는 기쁨이 더 큰 것 같았다.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말은 딱 이때 하는 말 같다.) 학교 교문을 단체로 신나게 빠져나갔다.


커다란 소방차 2대는 위엄 있게 교실 불길을 잡았고 다행히 교실 하나만 까맣게 타다 만 채 화재는 짧은 시간에 진압되었다.

소방관들은 마블 히어로들보다 더 멋졌다!


화재가 진압되고 나니 안심이 되어서인가? 그러고 보니 나도 오늘 밤 10시까지 야자감독을 하지 않고 집에 빨리 퇴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니 갑자기 나도 조금 전의 그 철없던 아이들처럼 잠시 마음 한 구석에서 기쁨이 일었다.


‘아싸~~ 나도 오늘 집에 일찍 갈 수 있다!’



저...교실 화재 최초 목격자시죠?”


그때였다. 집에 가려는 찰나 소방대원 한 분과 앰뷸런스에서 내린 하얀 가운을 입은 의료진이 나를 붙잡았다. 이유인즉, 교실 화재 당시 내가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혹시 유독 가스를 마시진 않았는지, 부상은 당하지 않았는지 건강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엥? 나는 완전히 멀쩡한데?!!’

하지만 결국 그들에게 이끌려 차를 타고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야만 했다. 그리고 각 종 피검사와 기타 여러 검사들을 받았다. 병원 응급실은 언제 와도 정이 안 가는 곳이다. 검사 한 가지 하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검사 하나를 하고 기다리고...검사하다가 되려 없던 병도 생길 것만 같았다. 모든 검사가 끝났을 때는 새벽 1시가 가까웠다.


‘맙소사...’

차라리 평소대로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했더라면 밤 10시엔 퇴근 가능했을 텐데 이게 뭐람...

언제 집에 가고 언제 또 잠을 자고 출근 준비를 하지? 게다가 검사 결과 아무 이상 없는 것으로 나왔다.

‘거 보라고!!! 나 아무 이상 없다고 했잖아!...’ 속으로만 이렇게 외쳐대고 나는 집에 겨우 귀가하여 새우잠을 자고 몇 시간 뒤 학교로 출근을 했다.


다음 날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온 채 출근을 하니 그 전 날 교실 화재의 원인은 1학년 학생 두 명이 소위 ‘식후 땡 담배’를 피고 담배꽁초 흔적을 없앤다고 처리한다는 게 담배꽁초를 휴지를 꽁꽁 싸서 교실 휴지통에 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이 눔의 꼴초 시키들!!!”

다른 선생님들 보는 앞에서 나는 화재를 일으킨 흡연 꼬맹이 둘을 향해 사자후를 내뿜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내 철없던 학창 시절, 학교에 불이 났으면 하고 생각했던 그 삐뚤어진 소원이 한참 후에 내게 이렇게 되돌아온 것은 아닌가 하고...


앞으론 소원 하나도 신중하게 올바르게 해야 되겠다고 생각 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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