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장년의세대는 직장에서 눈치 없이 말하거나 행동하면 직장 후배들로부터 꼰대취급을 받는다.
ㅡ카톡이나 메신저로 연락하면 될 것을 후배 직원에게 굳이 전화를 걸어 업무에 대한 지시를 한다. 꼰대다.
ㅡ복날이라며 다른 사람들 의견은 묻지도 않고 회식은 보신탕으로 먹잔다. 꼰대다.
(나는 보신탕을 싫어한다! 예전에 어르신 선생님께서 학년 회식을 보신탕집으로 정해서 그날 거의 물만 마셨던 기억이 난다)
ㅡ과로로 컨디션이 안 좋은데 퇴근할 때 술 마시자며 '소주에 고춧가루 타서 원샷 때리면' 컨디션이 올라간단다. 꼰대다.
(아픈 사람 골로 보낼 일이 있나? 소주에 고춧가루라니..,.)
ㅡ탕수육 시켰는데 주변사람들에게 찍먹, 부먹도 물어보지도 않고 탕수육에 냅다 소스를 다 부어버린다. 꼰대다.
온갖 매체에서 꼰대의 대항마의 개념으로 MZ(엠지) 세대를 언급한다.
그 연령대도 1980년대부터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까지 범위가 넓다.
그런데 엠지 세대도 좋은 의미보다 매체에서 희화화되어 소비되고 있는 것 같다.
ㅡ신입사원이 선배직원 앞에서 너무 솔직하게 할 말을 다한다. 엠지다.
ㅡ선배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되니까. 디지털 네이티브의 자부심이 있다. 엠지다.
ㅡ싫은 일은 굳이 참지 못한다. 엠지다.
ㅡ업무 실적보다는 자기계발이 더 중요하다. 엠지다.
ㅡ직장에서도상사가 옆에 있는데도 에어팟을 끼고 일한다. 엠지다.
ㅡ '판교 스티브 잡스'라는 말처럼 젊은 나이에 사업으로 성공한 엠지들은 위에서 언급한 꼰대보다 더 꼰대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그들은 '나이가 젊으므로' 절대 꼰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로 사람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규명 짖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득 될 게 없는 것 같다. 우리 모두 어린 시절이 있었고, 사춘기를 겪고, 사회인이 된다. 그리고 노인이 된다.
단지 모두들 각기 다른 방식으로 겪는다.
시대와 세대에 따라 사회분위기와 시스템이 다르므로 우리는 거기에 따라 적응하며 살아왔을 뿐이다. 단지 적응이 빠를수도 있고 느릴수도 있다.
그런데 빠르게 변화되는 사회와 시스템에 우리는 불편함을느낀다.
그 불편함의 이유를 우리는 나이별로 카테고리를 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거기에서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예전에 사업을 하는 제자에게서 '선생님은 이미 나이가 많으므로 무엇인가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하기엔 이미 늦었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 생각했다. 녀석은 '젊은 꼰대'라고. (그리고 난 상처받았다)
지구상의 유래 없는 장수 시대가 도래했다. 올해부터 우리나라 나이제도도 만 나이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단순히 나이라는 숫자로 사람을 규명하기엔 인간이란 너무 복잡다단한 존재다.
나이가 많아도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사람도 있고. 나이가 어려도 변화를 거부하고 자신의 의견만을 주장하는 꼰대가 될 수 있다.
결국 '꼰대'라는 말은 나이와 세대를 규정 짖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태도와 방향성에 대한지적'인 것같다.다시 말해 서로에게서 배우고 수용하려는 점이부족하고 자기주장만 고집할 때 우린 '꼰대'라는 말을쓴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말처럼 젊은사람들에게서도 배울 점이 많다. 노년의 어르신에게도 인생의 지혜와 통찰력에 대해 배울 점이 많다. 인터넷이 우리에게 정보는 줄 수 있지만 삶의 지혜와 통찰력을 주진 않는다. 물론누구에게나 단점이 있다. 그러면그 점은 거르면 된다. 세상에 장점만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불치하문(不恥下問)
손아랫사람이나 지위나 학식이 자기만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함.
내 삶의 방향성과 아이덴티티는 누가 규정 짖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매체에서 언급하는 어느 카테고리에도 들어가고 싶지 않다. 전 세계의 80억 인구 중에 지문이 똑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세상에 피는 꽃들도 모양이 똑같은 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