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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Feb 27. 2023

B사감과 러브레터

B사감에 대한 주관적 재해석

우리나라 입시를 거쳐본 세대들이라면 근현대 문학 작품은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입시가 주입식 교육의 끝판왕 아니겠는가)

김동인의 동백꽃(공효진이 나왔던 드라마 '동백꽃'아님). 이상의 오감도(오감도 시는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 김유정의 봄봄, 나도향의 물레방아, 채만식의 탁류, 염상섭의 삼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등... 입시생이었던 내가 당시 읽었던 근현대 소설들을 지금 어른의 시각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내용이 원초적이고 야한 부분들도 은근히 많다. 그때는 무조건 읽고 참고서에 나와 있는 대로 작품 주제를 줄치며 외우기에 급급했다. 문학 작품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주제와 핵심 키워드'를 암기해야 했다. 오직 시험을 위해서. 그래서 그때는 밀린 숙제 하듯이 억지로 내용을 암기하고 시험본 후 잊어버리듯 문학작품을 내것으로 소화한것이 아니라  '소비했다'.


그래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 근현대 작품이 있다. 개인적으론 현진건의 작품중에서  B사감과 러브레터가 가장 인상적이다. 작품 소재가 독특하다.

여학교 기숙사에서 B사감(여성임)은 여학생들이 남자들과 사귀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규율할 뿐만 아니라 여학생들을 철저하게 단속시킨다. 이 작품의 시대가 1920년대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보수적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ㅡ드라마 '김과장'의 윤리경영실장ㅡ




국어 시험공부할 때  작품의 의의와 주제는 매우 중요하다.


자, 위의 상황을 2023년 버전으로 생각해 보자. 같은 내용을 가지고 100년의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B사감은 비혼의 전문직 여성이다. (작품에는 결혼 못한 노처녀식으로 표현되어 있으나 2023년엔 자발적 비혼율이 매우 높다)

B사감은 그 당시 자신의 직역에 충실했다. 업무 중엔 엄격한 사감선생님의 페르소나로 흐트러짐 없이 일한다.

하지만 그녀도 사람이기에 업무가 끝난 후 자신의 방에서는 감정이 풍부한  자연인으로  돌아가 편지 낭독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무기력하게 빈둥거릴 수도 있었는데 그 와중에 편지라는 글을 낭송한다. 배운 여자다)

 할 때는 사사로운 정 따위는 없는 것처럼 냉소적이고 차가워 보이지만  업무 후에는 여학생들에게 온 러브레터로 가슴 콩닥거리는 소녀감성도 느낄 줄 아는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다.


2023년에 B사감이 있다면 흡사  우리와 비슷한 모습일 수도 있다. 직장에선  직장에 걸맞은 페르소나를 장착하고  일해야 한다.  그러나  퇴근 후에는 또 다른 나, 다시 말해 '본연의 내'가 된다.


말없던 김대리가 퇴근 후 폴대스를 추면서 즐거움을 찾기도 하고,  단아한 박계장 코스프레 메이컵하며 만화 속 캐릭터로 변신하기도 한다.

요즘엔 남성들도 폴댄스를 한다
직장에선 부끄러움 많은 박계장이지만 퇴근후엔 검객이 된다.


B사감과 러브레터에서는 이런 행동을 '기괴하다'라고 표현했지만 본캐, 부캐를 인정하는 다양한 삶의 양식을 인정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B사감이라는 인물은 열심히 살아가는 직장인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현진건의 작품이 나오고 상전벽해의 10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단순한 정보보다 창의력을 요구하는 시대가 왔다. (그런데 아직도 거의 대부분 주입식으로 수업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근현대 작품이 나왔던 시대상과 현재의 시대상을 비교해 며 캐릭터를 분석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국어공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예전엔 수업시간에  학생이 작품주제에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 외에 다른 의견을 하면 혼나고 교실청소를했다. 내 학창시절 이야기다. 내덕분에 교실이 많이 깨끗해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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