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자까야 Apr 19. 2023

서점 계산대는 심리상담소

내가 읽는 독서량은 가볍기 그지없다. 그러나 책을 워낙 좋아해서(독서보다는 책을 소유하기를 좋아한다) 여유가 있거나 친구와 약속이 취소되어 갑자기 남아버린 시간에 허둥댈 때 나는 서점으로 향하곤 했다. (TMI  :  지금은 공황발작 때문에 사람이 많은 서점은 못 가고 있지만...)


서점으로 놀러 가는 이유에는 나만의 몇 가지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번째서점은 인공 숲 같다.

책은 나무로 만들어졌고 그 책들이 꽂혀 있는 책꽂이도 나무로 된 책선반이다.  책꽂이는 거대한 나무, 꽂혀있는 책은 나무의 줄기 같다. 그 줄기마다 세상의 지식이 가득가득 들어 있다. 나는 인공숲을 거닐며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도시에서 벗어난 듯한 착각을 느낀다. 도시 속의 아마존. 서점이다.

두 번째로 서점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경제, 재테크 섹션에는 자본주의의 성공의 상징인 ()를 이루어보겠다는 사람들의 열망이 느껴지고, 토익 영어 섹션에는 취업준비생들과 급을 하겠다는 중년의 직장인의 눈빛에서 이번엔 꼭 외국어를 마스터하겠다는 결심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서점의 화룡점정 계산대 앞이다. 나는 이 부분이 제일 재미있는 곳이라고 느껴진다.


삐빅-.

다음 손님~.


서점 계산대 직원분이 시크하게 다음 손님을 호명한다. 그리곤 다시 계산대 직원은 손님이 고른 책의 바코드를 열심히 찍기 시작한다. 고객이 고른 서적의  총금액을 직원이 말하기 전까지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계산대 뒤에 줄 서 있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은 무슨 책을 샀나 상대편이 고른 책들을 슬며시 들여다본다.  짧은 침묵 속에 책을 고른 자의 내밀한 심리와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백만장자 시크릿>

<돈의 속성>

<나를 부자로 만드는 생각>


ㅡ음... 저 책들을 고른 손님은 가장 시급한 문제가 돈 버는 것이구먼~


<나는 남자보다 적금통장이  좋다>

<통장 풍차돌리기 어렵지 않아요.>


ㅡ저 책들을 양손에 꼭 쥐고 있는 여성분은 당분간 연애보다는  열심히 종잣돈을 마련하겠구나.


그러다  내가  고른 책들을 내려다보았다.


<방황해도 괜찮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 치유>

<마음아, 넌 누구니>


내가 고른 책들을 보아도 저절로 자기 객관화가 됨을 느꼈다.

나의 구매 도서 목록에서 현재의 나의 당면 문제가 여실히 보이니까. 계산대 직원이 내 책을 계산해 줄 차례가 올 때까지 손으로 책 제목들을 살포시 가려본다.


서점 계산대는 고객의 은밀한 욕망과 열망이 표현되는 장소이다.  손님들이 고른 책의 바코드를 찍으며 무. 표. 정. 하. 게. 결제 금액에 대해 말해주는 직원의 모습이 고마울지경이다. 계산 직원분이 행여 웃기라도 하면 괜스레 속마음을 들킬까 많이 부끄러워질 테니 말이다.

이전 27화 지하철역마다 꽃집이 은근히 많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