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와 심한 우울증의 콜라보로 난독증이 왔을 때는 수개월을 글 대신 그림을 봤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까만 건 글씨, 하얀 건 종이.
뇌가 고장이 나니 글이 해석되지 않았다. (손글씨도 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컬러 위주의 그림이며 사진만 보았다. 그러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난독증이 나아지고 다시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정신없이 브런치에 글을 썼다. 잃어버렸던 능력을 다시 찾게 되니 신이 났다.
세상에서 잠시 잊혀졌던 내가 "여기 죽지 않고 살아있노라고" 부르짖듯이 하루에도 여러편의 글을 썼다.
그러다 갑자기 다시 글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지인의 말 한마디 때문에.
주변 지인으로부터 나의 글은 일기장 수준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였다. 평소 내가 좋아했던 사람한테서 들은 말이라 그 충격은배가 되었다.
"언니, 언니 글은 에세이가 아니야. 일기장이나 블로그 수준이지~그런 건 글이 아니야~"
아... 그녀의 혀끝의 칼날은 내 마음을 날카롭게 베어버렸다. 혀끝의 칼은 바로 통증이 오지 않는다. 독이 퍼지듯이 서서히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솔직히 나는 진짜 일기장을 아날로그식으로 따로 써오고 있다. 일기장은 초등학생 때부터 평생 써왔다. 나의 진짜 일기장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일단 나만 읽는 일기장이기에 그날 있었던 일, 화가 났던 일(나의 일기장은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많이 한다)들을 쓴다. 쇼미 더머니에 나가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욕도 많이 쓴다.
그러나 브런치의 글은 최대한 윤문 되고 정제된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나만 보는 글이 아니니까.
나는 나의 브런치글 중한 줄이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희망했다. 비록 우울증 환자의 글이지만 남들은 웃길 수 있는 사람이고 되고 싶었다. 또한 단순한 강아지 자랑이 아닌 내가 키우는 강아지의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모습들을 통해 누군가에게 힐링의 미소를 짓게 하길 바랐다.
누가 나에게 강아지 따위의 글이나 쓰냐고 말한다.
누가 나에게 네 글은 일기장 수준이라고 말한다.
맞다. 나의 모든 글은 어쩌면 저급한 일기장 수준의 글일 수 있다.
...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삶을 구성하여 여러 파편들, 스쳐 지나가는 건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 날마다 부딪치는 것들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ㅡ 연필로 쓰기, 김훈ㅡ
작가 김훈의 말대로 나의 글도 단지 글일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타인의 긍정을 바라지 않아도 초연하게 계속 글을 쓰는 담대한 태도를 가질 수 있을까? 지인의 말 한마디에 한동안 상처를 받고 글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 작가 김훈의 글을 읽고 다시 겨우 한 글자, 한 글자 쓰게 되었다.
글도 마음의 근육이 단단해야 쓸 수 있는 것 같다. 나의 글도 쓰고, 또 쓰고, 또다시 쓰다 보면 일기장이 아니라 에세이가 되고, 정보성의 글이 되고, 타인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글로 변모할수 있겠지.
잠시 무너졌던 마음을 추슬러서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다음에 또 무너져 주저앉으면 그땐 시간이 더 걸릴진 몰라도 좀 더 단단하게 두 발로 서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