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코로나보다도 무서운 병 같다.(멘탈이 강했던 나도 절대 우울증 따윈 안 걸릴 줄 알았다) 왜 사람들은 피를 흘리면 놀라며 걱정해 주고 위로도 해주지만, 뇌가 고장 나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걸까? 눈에 보이고, 안 보이고의 차이인 건가?
담임교사를 하다 보면 한 반에 우울증 징조가 보이는 학생이 1~2명씩은 꼭 있다. 증상이 미비하면 그래도 괜찮은데(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말도 틀린 것 같다. 이 세상에 괜.찮.은. 병. 따윈 없다) 모든 일에 비관적이고, 말이 유난히 없으며 수업 시간마다 두통, 과호흡, 체온저하, 식은땀 등의 신체증상을호소하거나 그런 모습이 관찰되면 이미 우울증은 심각한 상태다.(수많은 학생들을 상대하다 보면 꾀병과 진짜 증상을 구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꾀병은 시험 때, 그리고 성적표가 나올 때 손이 떨린다며 자신이 '공황장애 또는 우울증이라고 주장'하는 학생이 있는데 그건 시험에 대한 회피기재다. 보통 이런 학생들은 시험이 끝나자마자 신나게 바로 축구하러 나간다. 그러나 진짜 우울증 증세가 있는 학생은 여러 가지 신체증상들이 한꺼번에 오는 경우가 많고 어떤 활동이든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이럴 경우 나는 해당 학생의 학부모에게 '조심스럽게' 연락을 한다. 보통은 담임교사의 연락을 받은 학부모님의 반응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아이가 우울증임을 전혀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학부모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ㅡ우리 아이가 정신병이라는 말이에요?!
ㅡ(격한 어조로) 우리도 우리 아이한테 쓸 방법은 다 써봤어요!
내가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우울증'이라는 키워드를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되면 꽤 많은 학부모들이 방어기제를 내포한 거부감을 표출한다. 부모님의 속상한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일단 우리 아이부터 치료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아이의 목숨이 걸린 일일수도 있으니까.
그러던 중 한 학생이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 아이는 극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학기 초부터 우울증 증상이 심하고 너무 부정적이어서 위로와 응원이 담긴 상담을 많이 했다.(그때는 교내에 위클래스 상담실 같은 건 없었다) 또한 몇몇 학과목 선생님들도 그 아이와 수시로 상담을 하며 도와주어 1학기 내내 수업에 적응을 하지 못했던 그는2학기에는 정규수업, 방과 후수업까지 열심히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차도가 많이 좋아진 줄 알았다.
크리스마스이브 당일.
학교 석식을 먹으며 그 아이는 내년엔 친구들도 적극적으로 더 많이 사귀고 공부도 열심히 해볼 거라며 내게 새해포부를 당차게 말했다. 웃는 그 아이를 보고 나도 웃었다.
그러나 다음 날 그 아이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지금이야 '코로나블루'라고 매체에서 우울증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어 사람들의 인식이 높아졌지만 그 당시 그 아이의 부모님도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우울증에 무지했다. 지금 같았으면 (현재 나도 그 아이처럼 우울증을 심하게 겪고 있으니까) 학부모에게 아이의 우울증 상태를 어떻게든 인지 시키고 병원치료를 적극적으로 강권했을 것이다.(안타깝게도 그 아이는 병원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장례식 당일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은 그 아이의 빈소에 같다. 반 아이들은 어제까지 함께했던 급우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사진 속의 친구가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 아이의 부모님은 주저앉아 손으로 바닥을 내리치며 그저 목놓아 울었다. 그날은 남겨진 우리 모두에게 크나큰 상흔으로 남아버린 크리스마스였다.
뒤편에서 이야기를 하겠지만 우울증에 대해서 사람들이 오해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인터넷 빅데이터 시대에도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아서일까. 정신과 비용이 비싸다, 정신과에 다니면 진료기록이 남아서 진학이나 취업에서 불이익을 당한다 등등.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답답해서 마이크라도 잡고 '제대로 좀 알자'라고 외치고 싶다. 각자 자신이 아는 일부 지식만 전부라고 생각한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나도 여전히 무시로 찾아오는 죽고 싶다는 마음과 싸우며 이 글을 쓰고 있으니까.
정신과에 대한 일종의 잘못 알려진 낭설과 내가 몇 년간 실제로 받고 있는 우울증 치료의 다양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내용이 길어 후속 편에서 이야기하겠다) 주변 사람들에게 잊힌또 한 사람의 이야기도 하려 한다.
나의 곁을 떠난 또 한 명은 친한동네 동생이었다. 큰 키에 쾌활한 표정이 매력적인 여대생이었다. 같은 헬쓰장에서 자주 마주치다 보니 어느덧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헬쓰장에서 자전거 스피닝을 매우 좋아했다. 그날도 연정이는(*연정이는 가명이다) 스피닝을 열정적으로 하고 난 후에도 추가적으로 고강도 운동도 하고 있었다. 당시에 나도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풀던 터라 퇴근 후에과도하리만치 격렬하게 운동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런 내가 봐도 연정이의 운동량은 비정상적으로과했다.
그날도 그녀는 몇 시간 동안이나 쉬지 않고 운동을 하고 있었다.
ㅡ연정아, 너는 충분히 날씬한데 왜 그렇게 운동을 많이 하니?
연정이는 170센티가 넘는 모델 같은 체형이었다.
ㅡ언니, 제가 예전에는 90킬로가 넘었었거든요. 그때 지하철 역에서 남자 두 명이 저를 보며 '돼지 같은 년'이라며 비웃으며 지나갔어요. 그게 너무 상처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죽도록 살을 뺐어요. 저는 체중을 45 킬로그램 대까지 더 빼려구요.
172센티의 키에 45 킬로그램이라니...
예상치 못한 답변에서 그녀의 트라우마를 느낄 수 있었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내 핸드폰에는 한 통의 문자가 와있었다.
O연정 별세.
OO 병원 장례식. OO호실.
발인 O월 O일.
이미 충분히 모델처럼 이뻤던 그녀는 그렇게 내 곁을 떠났다.
그때도 나는 몰랐다. 항상 쾌활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던
그녀가 극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는지. 겉으로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고 있을 거라는 것을.
평소 그녀에게 좀 더 따뜻한 말을 해줄걸.
아니면 그냥 토닥여라도 줄걸.
혹시 내가 그랬다면 그녀는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간 그날 극단적 선택을 안 하지 않았을까?
고인이 되었다는 문자를 보고 온갖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에 무지했던 나의 두 번째 자책감이었다.
그로부터 나는 나이를 먹었고, 그들은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아름다운 꽃다운 17세, 23세로 멈춰버렸다.
저도 언젠가는 우울증과 공황장애에서 완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 곁을 먼저 떠난 두 사람처럼 다른 이들은 더 이상 그런 슬픈 일을 겪지 않았으면 희망합니다.
후속 편에는 우울증 민간상담과 병원상담치료의 차이, 그리고 비용(비용이 무조건 비싸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이 부분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신과를 다니면 혹시 진학이나 취업에 제약을 받는지, 약의 효과와 부작용은 무엇인지, 그리고 치료를 제대로 받으려면 어떤 정신과(대학병원, 개인병원)를 가야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정보를 알려드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