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옷과 줄넘기

내가 옷을 선택하느냐, 옷이 나를 선택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by 이자까야

날씨가 따뜻해졌다.


큰일이다.

더 이상 '김말이 깜장색 롱패딩'을 입을 수가 없게 됐다.

두꺼운 옷으로 온몸을 돌돌 말고 숨겨왔던 내 뱃살과 옆구리 가(그 두 가지를 합쳐 '배둘레햄'이라고도 부른다) 따뜻한 온도와 함께 대명천지에 드러날 상황이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

내 옷장 속의 불편한 진실.


옷장의 규모와 상관없이 언제나 내가 입을 옷 따윈 없다. 게다가 더 슬픈 건 내게 옷을 고를 선택권 따윈 없다는 것이다. 돈은 내가 냈는데 옷이 나를 선택한다.

옷에 내 몸이 들어갈 수 있으면 나는 그 옷의 간택을 받은 거다! 3개월 할부로 구매한 백화점 원피스는 몇 년째 나를 간택하지 않는다. 뱃살만 빠져도 원피스 지퍼가 올라갈 것도 같은데...

제길, 희망고문만 몇 년째란 말인가.

친구가 나더러 지지리 궁상이라며 그 원피스를 내다 버리란다.

무슨 그런 청천벽력 같은 말을!

어찌 희망을 버리란 말인가? 사람은 희망으로 산다. (옷 한 벌에 나의 개똥철학이 발동한다)


현관 구석에 던져져 있던 줄넘기를 주워 들고 다짐한다.


"원피스야, 더 이상 너의 간택따원 기다리진 않겠어."

"네가 아니라 내가 널 선택하리라!"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겠지만 착용금지되었던(?) 저 원피스를 이번엔 입고 말겠다. 우울증 환자가 샤랄라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 꽃까지 꼽으면 완벽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금수저는 아니지만 근수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