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에 걸리고 일상을 잃어버리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지금껏 당연하게 해 왔던 일들을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왜 살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의 무능력함을 많이 자책하게 된다.
집사가 나름의 심각한 존재의 이유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뽕이 씨는 이런 집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때 되면 밥 달라 하고 하루 세 번 간식을 대령하라 한다.
자신을 비관하고 떨어진 자존감에도 뽕이 씨의 닦달?에 뽕이 씨에게 사료를 주고, 간식을 주고, 한 때 사료와 간식이었던? 뽕이 씨의 응가를 치운다. 뽕이 씨의 구리구리하고 공격적인 똥냄새가 나의 존재의 이유고 뭐고 현실의 감각을 강렬하게 일깨운다.
잘 먹고, 잘 놀고 나면 뽕이 씨는 내 옆에 누워 머리는 내게서 최대한 멀리, 궁둥이는 내 얼굴 쪽으로 갖다 대고 잠을 잔다.
동물이 인간에게 자신의 약점인 엉덩이를 보여주고 잠든다는 것은 무한신뢰 이상의 그 무엇이다. 뽕이의 긴 허리와 엉덩이를 물끄럼히 바라보다가 보들보들하고 따뜻한 뽕이 씨의 등에 얼굴을 파묻고 있노라면 뽕이 씨의 들숨, 날숨이 느껴진다. 폴딱폴딱... 뽕이 씨의 심장소리는 부드러운 메트로놈 같다. 뽕이 씨의 따뜻한 온기에 위로받고, 나를 향해 자신의 약점을 보여주는 뽕이 씨의 믿음에 나의 존재의 쓸모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