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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Apr 29. 2023

베리 그린(Very Green)

자연은 그립지만 벌레가 무서워

나의 하루는 24시간을 다시 분 단위로 쪼개어 짹각짹각 시계의 움직임과 소리와 함께 먹혀들어가는 그런 정신없는 하루였다.

바쁘고 번잡한 도시의 삶을 살다 보면 번아웃과 현타가 찾아오곤 한다.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언젠가는 한적한 시골에 내려가서 초록의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살아보리라."


평소 나의 내밀하지만 강렬한 열망이 도서대에 얌전히 꽂혀있던  <매우 초록>이라는 책을 찾아내었다. 매우 초록. 이 짧은 문구로 회색의 도시 생활과는 정반대의 상큼한 자연 속의 자유인을 꿈꾸게 했다.


그러나 인구밀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편의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골에 산다는 것은  도시의 익명성과 상업적 편리함을 누리던 도시인인 나에게 마냥 이상적인 웰더니즘을 꿈꿀순 없을 것이다.


책에서 말해주듯 언제나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크다.

온 거리를 안전하게 밝혀주는 네온사인과 가로등, 고층빌딩, 도시의 어느 방향이든 가게 해주는 교통시설, 필요물품을 언제든지 살 수 있는 편의점과 대형마트 등 지금껏 당연시 누리던 삶의 방식을 포기해야 하는 건 기득을 내려놓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도시에서 시골로의 삶은 이쪽 지역에서 저쪽 지역으로서의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닌 이쪽 방식의 삶을 포기하고 저쪽 방식의 삶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그동안 내가 고수해 왔던 삶의 방식, 관성적 사고 자체를 바꾸어야 하는 강단과 공력이 들어간다.


세상의 모든 변화와 선택적 속성에는 새로운 것과 기존의 것들의 등가교환이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이것을 가질 테니 저것을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삶에는 불편함이 따를지라도 낯선 것들의 설렘이 있다. 특히 자연 속의 삶은 조용하고  

차분한 설렘이다. 도시의 번잡한 거리 대신 산속 에움길에서 느낄 수 있는 고요함, 그리고 깔끔하지만 삭막한 아스팔트대신 흙에서 왁달박달 자라는 여리여리 연두색의 풀들.  비가 온 뒤의 맑은 공기와 고소한 흙냄새.


책을 읽다가 자연을 누리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 귀찮지만 먹고사니즘을 위해 밭일하며 채소도 키우고, 글도 쓰는 나를 상상해 본다.


앗, 그러나 불현듯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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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택배비에 마음이 이리 흔들릴 줄이야. 게다가 자연의 일부인 곤충 또는 벌레가 무섭다. 특히 바선생(바퀴벌레)이 출몰하면... 생각하기 싫다.


아직은 도시에서 초록을 그리워하며 방역이 잘되는  아파트 주민인 도시인으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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