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더 성장할 수 있길
조금은 여유가 생겼을 때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150일이 넘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을 때 최소 한 달에 두 번씩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글을 쓸 정도로 마음이 여유롭지 않았기에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여유롭지 못했던 마음은 스스로를 부정적 감정으로 몰아넣었고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글을 계기로 힘들었던 한 해를 정리하고 올해는 좀 더 나은 한 해를 맞이하고자 한다.
나에게 2022년을 한 단어로 표현해보라고 한다면 '자만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난 2월 첫 직무를 PM으로 시작한 뒤 얼마 되지 않아 호기롭게(성급하게) 'PM은 대체 회사에서 뭘 할까?'라는 글을 작성했다.
글을 갈무리하면서 미래의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파악하기 위한 마일스톤을 남기기 위해 작성했다고 썼지만, 그 글만 보더라도 자만에 빠져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다들 힘들다고 말하는 PM이지만 난 다르다.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하고 있고, 남들보다 빛나게 성장하고 있다.
입사한 지 채 3주가 되지 않아 처음 스쿼드를 맡게 되었을 때 했던 생각이다.
겉으로는 부담을 느끼는 척 포장했지만 회사에서 인정받았다는 뿌듯함이 나를 가득 채웠다.
5월에는 회사에서 오랜 기간 준비해왔던 프로젝트의 막바지에 숟가락을 얹게 되었고, 내가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끝낸 모양새가 되어 모두들 나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내가 프로젝트에 기여한게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여 칭찬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뿌듯함은 끝없이 덩치를 키웠고 자만심이라는 치명적인 독이 되어 다가왔다.
많은 곳에서 정의하고 있는 PM의 역할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여 프로덕트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때 입사했기 때문에 문제의 발견보다는 해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뒤에야 진짜 PM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회사는 나에게 프로덕트의 문제를 발견하고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나는 PM으로서 그 기대를 충족시켜야만 했다.
아니 충족시켜야만 한다고 느꼈다.
자만심에 휩싸여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착각했기에 나의 모든 행동과 의사결정은 정답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야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신입이 모든 정답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때문에 내가 포장한 모습과 실제 능력 사이의 격차는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경험과 요령이 없었기에 간격을 메꾸기 위한 방법은 노력을 빙자한 자기 학대밖에 없었다.
남들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바쁘게 일하면 그 간격을 메꿀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워라밸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스스로를 챙길 시간마저 아깝게 느껴졌다.
여자친구에게도 정말 미안했지만 회사 일을 우선시하게 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그러나 수많은 야근과 감당하지 못할 만큼 벌려놓은 업무들 속에서도 만족할만한 정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PM을 할 자격이 없는 것처럼 보였고 당장 눈앞에 있는 업무와 알 수 없는 내 미래가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러는 와중에 2022년은 흘러갔고 남아있는 것은 눈부신 성과나 성장이 아니라 혹사당한 나 자신이었다.
연초에 챙기기로 마음먹었던 건강은 신경도 쓰지 않고 회사에서 돌아오면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전부였다.
강의를 듣거나 브런치를 작성하는 등 업무 외적인 성장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를 챙기지 않았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편두통에 시달리는 나날이 끝없이 이어졌다.
12월 말 회사 성과 리뷰를 작성하며 내세울 수 있는 성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글 속의 PM분들은 문제 발견을 위한 방법론도 많이 알고 있고 더 깊게 고민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들보다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성과를 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능력의 부족이 아닌 '자만심'에 있었다.
나는 남들에게 항상 뛰어난 모습으로 보이길 바랐으며 쉽게 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자만에 빠져있었다.
자만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나 자신을 학대했고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만들었다.
프로덕트의 문제 발견은 미친듯이 고민했으면서 내 문제의 발견은 소홀하게 여긴 결과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발견했기에 이제는 적극적으로 해결할 차례다.
2023년에는 자만으로 가득 찼던 나를 버리고 지나치게 높은 성과와 성장에 목매지 않기를 바란다.
성장의 정도는 이미 정의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난 남들보다 뛰어나지도 않고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2023년 12월의 내가 이 글을 다시 읽었을 때 아래처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들보다 빛나지 않았지만 어제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더 성장한 한 해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