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한 번에 모든 것을 생략하는 대신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갑자기 엄마생각이 나서 안부전화할 땐 그럭저럭 괜찮다. 솥에 삶을 빨래를 빨랫비누에 치대고 있거나, 건조기는 내버려두고 볕에 빨래를 널러 갔을 테니까. 그런데 딱 전할 말이 있을 중요한 순간에 전화를 받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 이름 모를 부아가 치민다.
몇 번은 참다못해 타박 아닌 타박을 했더랬다.
“엄마 전화 좀 잘 받으시면 안 돼요? 필요할 때 전화를 안 받으니 일처리를 못하잖아요. 물어놓고 답을 안 하면 어쩌란 거예요!” 라든가, 뭔가 할 말이 있었는데 까먹기라도 하면 더 찜찜해 소리를 냅다 질렀다.
전화기를 몸에 지니고 다니라고, 장식품이 아니지 않냐는 말은 당연히 덧붙였다. 나도 없는 워치를 선물로 해드릴까 생각도 했다.
그러다 몇 번은 포기를 한 상태로 전화를 걸었다. 안 받는 것을 디폴트로 해두면 일단 마음이 편하다. 급히 카톡창을 열어 용건을 메시지로 남겨두고, 언젠가 다시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텍스트를 대화로 바꾸면 되니 말이다.
고향에 계신 엄마를 뵈러 집에 며칠을 머물 때야 비로소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는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이유가 무엇인고 했더니, 손이 두 개고 다리가 두 개여서였다. 무슨 말이냐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무한한 바쁨의 굴레를 엄마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엄만 내가 클릭 몇 번으로 생략하는 그 모든 일을 고스란히 다 하고 계셨다.
깐 마늘을 사는 대신 마늘 씨를 뿌리고 거둬들여 마늘을 손수 까서 절구에 찧는 그 모든 과정. 돈 좀 더 주고 국내산 통깨를 골라 담는 대신, 깨를 심고, 털고, 다시 널고 또 털고, 마당에 말려 진짜 국산통깨를 손에 넣는 그 모든 일이 ‘단번에’ 되는 것은 없었다.
진짜를 골라내는 일 대신
진짜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니
전화기를 손에 붙잡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먹거리뿐이랴. 때 타면 버리고 새것을 사는 편리함대신 삶고, 말리고, 꿰매고, 이어 붙이는 모든 것에 ‘정성’을 담아 물건을 대한다. 비단 돈을 아끼기 위함이 아닌 작은 것부터 소홀히 하지 않는 삶의 자세였다.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를 다시 읽어본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해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을 썩여도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냥,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엄마에게 안부 전활 건다. 늘 ing인 엄마의 삶을 잠시 세울, 잠깐의 여유를 위해.
추운 겨울 느낄 엄마의 온기를 느끼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