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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들 Oct 15. 2023

돌아 봐줘

뭐가 그리 급하니

 아이에게 단짝 친구들이 생겼다. 모든 스케줄이 끝나면 다 같이 모여서 놀았다. 뭐 하고 노는지는 지금도 잘 모른다. 늘 신나게 놀다 왔다. 아이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얼굴이 햇볕에 그을려 벌게져 있었다. 목소리가 기분이 좋은지 업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옷이 더러워져 있었다. 그날 밤은 잠을  잤다.


 1학기때만 해도 걱정이 많았다. 아이는 낯을 가렸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 쉽게 말을 붙이지 못했다. 친구들이 먼저 말을 걸어야 함께 놀았다. 그렇지 않으면 교내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봤다고 했다. 아이는 별 일 아니게 담담히 이야기했다. 아이가 쓸쓸했을 것이다. 나와 아내는 가슴이 아팠다.


 우리는 아이가 친구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책도 보고 전문가 이야기도 들어봤다.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는 친구들을 만나면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었다. 각 상황 별로 어떻게 말해야 될지 함께 고민했다. 셋이서 역할극도 해봤다.


 아이와 등교할 때 가끔 같은 반 친구들을 만났다. 아이는 친구들에게 쭈뼛쭈뼛 인사를 했다. 내가 옆에 있어서 그런지 선뜻 친구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나는 아이에게 친구들과 함께 가라고 했다. 아이는 친구들에게 뛰어갔다. 나는 천천히 걸어 아이 뒷모습을 지켜봤다.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친구 옆에 딱 붙어 있으려 했다. 친구들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경청하고 있었다. 친구 손을 꼭 잡고 갔다. 아이는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내 마음이 짠했다.


 어느 날 아이 하교를 위해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혼자가 아니었다. 같은 반 친구 한 명과 함께 나왔다. 그 친구는 우리와 같은 방향이었다. 셋이서 어색한 동행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내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혼자 반 걸음씩 늦춰 걸었다. 아이가 친구와 함께 가도록 했다. 아이들은 재잘재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이따금 아이들이 웃는 걸 보니 재미있는 내용인 듯했다.


 아이들은 헤어질 위치에서도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한동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시간이 길어졌다. 집에서 기다릴 친구 부모님이 생각났다. 내가 먼저 그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제야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토록 바라왔던 장면이기도 했다. 감격스러웠다. 아이들이 더 놀도록 나 두어야 했었다. 그제야 후회가 밀려왔다. 나도 처음이라 당황했었다.


 아이에게 친구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물어봤다. 소소한 이야기였다. 일상 대화를 나눴다. 이것까지는 우리가 알려주지 않았다. 같이 연습하지도 않았다. 아이가 스스로 했다. 아이는 우리 생각을 한참 뛰어넘고 있었다. 아이가 기특했다. 그동안 아이가 한 노고에 칭찬했다.


 이제는 등교 길에 절친들과 같이 간다. 하교 후 모두 일과를 마치고 나면 다시 어울린다. 아이는 매일 친구들과 새로운 즐거움을 누린다.


 아이는 그 기쁨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처음이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너무 좋았을 것이다. 하루 중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 학교 숙제보다 친구가 먼저가 됐다.  아이에게 조절이 필요했다. 우리가 도와줘야 했다.


 주말에는 아이가 우리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수요일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뵙기로 했다. 그 외에는 언제든지 친구들과 놀게 했다. 아이는 만족스러운 한 주를 보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균형 있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약속 시간에 대한 개념도 알려줬다. 당연히 서로 만날 시간을 미리 정하는 줄 알았다. 아이들에게는 아직 그런 체계가 없었다. 오늘 놀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른 채 서로 학원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각자 소중한 시간이 대중없이 흘러갔다. 학교에서 얼굴 보면 방과 후 만날 시간을 미리 정하기로 했다. 시간이 안되면 다음에 보기로 했다.


 약속 시간을 정하니 아이는 자기 시간을 알차게 썼다. 빈 시간에 책도 읽고 수학 공부도 하고 낮잠도 잤다. 만날 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놀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이 얼굴은 행복으로 가득 찼다. 완벽한 하루였다.


 친구들과 약속이 갑자기 취소된 경우도 있었다. 아이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크게 실망했다. 속상하여 침대에 한동안 누워 있었다. 보기 안타까웠다.


 아빠와 같이 나가 놀자고 했다. 아이는 줄넘기를 하자고 했다. 우리는 줄넘기를 가지고 동네 공원으로 갔다. 아이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줄을 넘었다. 줄넘기를 다하고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아까 풀 죽은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아이는 기분이 안 좋으면 운동을 한다고 했다. 먹고 싶은 것도 먹는다고 했다. 아이는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스스로 감정 회복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아이가 아빠는 어떻게 하냐고 물어봤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할 말을 잊었다. 나는 아이처럼 스트레스 관리를 잘 못해왔다. 덮어두고 넘어간 적이 많았다. 아이한테 배웠다. 나도 스스로를 달래는 방법을 빨리 찾아봐야 했다.


 우리가 아이를 다 아는 줄 알았다. 아이는 우리가 알려줘야지만 크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아이는 우리가 주는 것만 받고 자라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 성장하고 있었다. 혼자 경험하고 고민하며 행동하고 있었다. 아이는 학교와 집에서 매일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날이 모여 아이를 조금씩 새롭게 만들고 있었다.


 이제 우리 손에서 조금씩 멀어져 나가기 시작하나 보다. 물론 아이는 아직 나와 아내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이가 아직 아기 같다. 그런 아이가 자라고 있음을 축하한다.


 아이는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갔다. 뭐가 그리 급한지 빨리 갔다. 그 뒷모습만 바라봤다. 언제부터인가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졌다. 아이가 변화하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아이는 당연히 성장해야 한다. 다만 적당한 속도면 좋겠다. 나와 아내가 뒤에서 충분히 바라볼 수 있는 정도면 한다. 아이가 뒤에 있는 우리를 가끔 돌아봤으면 한다. 아이를 키우는 힘듬보다 그 상실감이 더 아플 거 같다.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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