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제주도에 가기로 했다. 우리에게 제주도에 대한 열망이 충만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드디어 여름방학이 됐다. 아이는 학기 시작부터 방학을 기다렸다. 말년 병장처럼 늘 날짜를 셌다. 방학 때 특별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방학하면 학교를 안 가니 그랬다. 어른들이 회사 가기 싫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이나 어른이나 같았다.
아이는 몇 달 전부터 ‘제주도’ 노래를 불러왔다. 같은 반 친구들이 이미 다녀왔다고 했다. 작년 제주도 추억을 잊지 못하는 이유도 있었다. 그 기억은 아름다운 풍경과 맛집이 아니었다. 오직 수영장 때문이었다. 아이와 어른이 달랐다.
올해 여름 날씨는 양극단이었다. 모든 것을 팔팔 끓이는 무더위였다. 아니면 모든 것을 축축하게 적시는 폭우가 내렸다. 40여 년 살면서 이런 극단은 처음이었다. 양쪽을 오가면서도 변하지 않는 게 있었다. 꿉꿉함이었다. 그 축축함은 우리를 축축 처지게 했다. 여름 내내 괴롭혔다.
나와 아내도 임계점에 다다랐다. 집 문제로 몇 달 동안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렸다. 유난스러운 날씨에 질려 버렸다. 에어컨으로 이 불쾌함을 피할 수 없었다. 물속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우리 모두 떠날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표를 찾아봤다. 시점이 극성수기라 큰 기대는 안 했다. 놀랍게도 제주도 가는 비행기 자리가 있었다.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숙소도 렌터카도 다 있었다. 숙소는 하루, 이틀 단위로 메뚜기 같이 뛰어넘어 다녀야 했다. 한 곳에서만 오래 머물 생각은 아니었기에 괜찮았다. 이마저도 다른 사람에게 뺏기면 안 됐다. 보자마자 빨리 예약해 버렸다.
운이 좋았다. 극성수기라는 편견에 지레 겁을 먹었다. 미리 포기했다면 이런 행운도 누리지 못했다. 안될 거 같아도 우선 부딪혀 봐야 된다. 하나 배웠다.
지금까지 제주도 여행은 주로 관광지로 갔었다. 이제 웬만한 곳은 다 가봤다. 맛집을 돌며 많이도 먹었다.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는 맛에 실망했었다. 이번에는 다른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 새로운 여정은 아이의 제주도(수영장) 추억을 충족시켜야 했다. 나와 아내에게도 만족스러워야 했다. 고민 끝에 바다로 가기로 했다. 그전에 바닷가는 발자국만 찍고 갔었다. 찾아보니 제주도에는 수많은 바닷가가 있었다. 일정과 동선을 고려하니 두 군데 정도 갈 수 있었다.
함덕 해수욕장은 아름다운 바닷가였다. 그곳은 에메랄드색 파도가 치는 곳이었다. 자신의 외모를 자랑하는 듯 물결이 적당하고 우아하게 밀려왔다. 백사장도 혼자 튀지 않았다. 강렬한 햇살에 모래는 눈부시게 빛났다. 바다와 함께 그 결을 맞추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이 아름다움에 빠졌다. 아이는 물놀이에 빠졌다. 우리는 한참을 그곳에 머물렀다. 더위도 모르고 쭉 있었다. 덕분에 다들 빨갛게 익었다. 그곳은 그렇게 우리에게 또 다른 추억이 됐다.
또 다른 바다는 하도 해수욕장이었다. 이곳은 상반된 매력이 있었다. 화려하지 않은 곳이었다. 대신 변화무쌍 하였다. 서해 바다만큼 조수 간만의 차이가 컸다. 어떤 때는 넓은 속살을 보여주기도 했다. 부끄러운지 금방 감추기도 했다. 바다 같지 않게 파도가 잔잔했다. 깊지도 않았다. 바닷물이 내 몸을 편안하게 감쌌다. 나와 아내는 이 평온함이 좋았다. 아이는 스노클링이 좋았다.
하도 해수욕장 입구에는 서핑 보드를 대여할 수 있었다. 레슨 받는 것도 가능했다. 신경 쓰지 않았다. 생각조차 안 했다. 첫날은 바닷물에서 신나게 놀았다.
둘째 날, 어제와 똑같이 물놀이만 하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제주도에 온 이상 특별한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서핑을 배워 보기로 했다.
아내와 아이에게 제안했다. 웬일로 아이는 두 번째 만에 오케이 했다. 아이는 나를 닮아 시작이 힘들다. 이번에는 빠른 결정을 했다. 아이도 신선한 추억을 남기고 싶었나 보다. 고마웠다.
레슨을 1시간 받았다. 배우는 학생은 나, 아내, 아이까지 우리 셋만 있었다. 선생님께 일대일 과외받듯이 배웠다. 파도가 어제보다 더 잔잔했다. 우리 같은 초보에게 최적이었다. 모든 것이 우리를 따라줬다. 서핑 배우기 딱 좋은 날이었다. 감사했다.
우리는 서핑 보드 위에 서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물에 빠지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제일 먼저 올라간 사람은 바로 아이였다. 아이는 두 발로 당당히 일어섰다. 얼굴은 자신감이 넘치고 늠름했다. 나와 아내뿐만 아니라 선생님까지 아이에게 손뼉 쳤다. 아이는 쑥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승리를 즐기고 있었다. 멋있었다.
나와 아내도 결국 서핑 보드 위에 설 수 있었다. 레슨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한동안 서핑을 즐겼다. 실력은 아직 보드 위에 서 있는 수준이었다. 우리 나름대로 신나게 놀았다. 우리는 서핑이라는 새로운 레퍼토리를 추가했다. 그렇게 새로 추억을 새기고 있었다.
나 혼자면 아마 서핑의 서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난 스릴을 즐길 줄 몰랐다. 위험하면 주로 피해왔다. 아내와 아이가 덕분에 가능했다.
우리는 못하면 못하는 데로 잘하면 잘하는 데로 했다. 도전이 성공했을 때 그 기쁨을 다 같이 누렸다. 실패했을 때는 등을 토닥였다. 그저 하루를 함께 즐겼다. 이런 그들이 있어 용기가 솟아났다. 나 스스로 멈췄던 것들을 움직이게 했다.
이 멋진 사람들과 오늘도 함께 한다. 그들이 나를 멋있게 채워준다. 나도 근사하게 그들을 채워준다. 서로를 변화하게 한다. 그동안 몰랐던 즐거움을 누리게 한다. 이들에게 서핑 선생님께 배운 샤카 사인을 보낸다.